고대 중국에서 하나라를 무너뜨린 은나라는 하나라의 역법을 버렸다.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키는 ‘정월’을 한 달 앞당겨 12월로 정했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는 한 달을 더 앞당겨 11월을 정월로 삼았다. 모두 새로운 왕조가 ‘시간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는 뜻을 내세웠다. 이후 한나라 때 하나라의 역법으로 돌아왔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섣달’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섣달’은 어원적으로 ‘설이 들어 있는 달’을 뜻한다. 은나라 때는 ‘설’이 음력 12월에 있었다. 이때의 기억, ‘음력 12월=섣달’이 언어 속에 화석처럼 남았다. 역법이 바뀌면서 지금처럼 ‘섣달’은 ‘음력 12월’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섣달’이란 표기는 ‘설ㅅ달/섨달’ 형태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ㅅ’은 관형격 조사 ‘의’와 같은 기능을 했다. 즉 ‘설의 달’을 중세 국어에서는 저렇게 적었다. ‘섨달’은 ‘섯달’을 거쳐 ‘섣달’이 됐다. 지금 ‘섣달’로 적는 근거는 한글맞춤법 제29항에 있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 이 규정에 따라 ‘설’과 ‘달’이 합쳐졌지만 ‘섣달’로 적는다.
‘ㄹ’이 ‘ㄷ’ 소리로 난다고 하지만, 사실은 ‘ㅅ’의 영향을 받아 ‘ㄹ’이 탈락한 결과다. 이후 [ㄷ]으로 발음이 굳어졌고, 맞춤법 규정에 따라 ‘섣달’로 정착됐다. ‘숟가락’도 ‘술ㅅ가락’에서 비롯됐다. ‘사흗날(사흘)’ ‘이튿날(이틀)’도 ‘ㅅ’의 영향을 받았다. ‘설날’도 ‘설ㅅ날’에서 시작했지만, 일찍 ‘설날’로 굳었다. ‘며칠+날’은 ‘섣달’처럼 ‘며칟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