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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치" "냉혹한 게릴라 딸"…베네수 실권자 된 부통령 누구

중앙일보

2026.01.04 22:05 2026.01.0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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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축출된 뒤 델시 로드리게스(56) 부통령(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실권자로 떠올랐다. 현지 헌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엔 부통령이 권한을 승계하게 돼 있다. 여기에 로드리게스가 좌파 혁명의 상징적 가문 출신이자 마두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혀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드리게스 권한대행은 4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영어로 성명을 올려 미국을 향해 공개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미국이 국제법의 틀 안에서 공동 발전을 지향하는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우리와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께, 우리 국민과 우리 지역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대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적었다. 이어 “베네수엘라는 평화와 평화적 공존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한다”며 “주권 평등과 내정 불간섭을 전제로 한 균형 있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우선시한다”고 강조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하루 전만 해도 “마두로는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대통령”이라며 미국에 항전 의지를 보였던 태도에서 180도 바뀐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체포 직후인 지난 3일 국방위원회를 주재하면서 마두로에 충성을 표명하며 미군의 군사 작전을 “주권에 대한 침략”이라고 규탄했다. 거기에 “베네수엘라는 어떤 나라의 식민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AP통신도 4일 나온 메시지에 대해 “불과 하루 전 강경 연설과 대비되는 분명한 어조 변화”라고 평가했다.

승계 주체 지목 이후 항전 의지를 비친 로드리게스에게 트럼프가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앞서 “미국을 도울 것”이라며 기대를 보냈지만, 로드리게스의 비판에 “(로드리게스가)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2019년 1월 2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미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8년 부통령으로 임명된 로드리게스는 좌익 게릴라 지도자의 딸로, 10여년간 마두로 정권의 핵심 요직을 거친 ‘냉혹한 실세’로 평가된다. 그의 부친 호르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는 1970년대 좌익 게릴라 지도자로 활동하다 미국인 사업가 납치 사건으로 체포돼 구금 중 사망했다. 당시 일곱 살이던 로드리게스에게 이는 무장 투쟁과 이념적 순교, 반제국주의 서사로 각인된 사건이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혁명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말한 바 있으며, 마두로는 그를 “젊고 용감한 순교자의 딸이자 혁명가”라고 치켜세웠다.

마두로의 두터운 신임 속에 로드리게스는 정보통신부 장관, 외무장관, 제헌의회 의장을 거쳐 재무·석유 장관을 겸직하며 차베스주의 체제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호세 마누엘 로마노 정치 분석가는 CNN에 “그는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받아온 매우 유능한 권력 운영자이며, 군과 행정부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야권에서는 명품을 즐기는 그의 사치스러운 이미지가 극심한 민생 위기와 괴리돼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3년 마두로 집권 이후 약 80% 위축됐고, 8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이주했다.

지난해 7월 1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마이케티아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이민 단속으로 몇 달 전 미국에서 추방된 이민자들을 맞이한 후,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왼쪽),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가운데),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아직 로드리게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온건한 민주화를 이끌 대안이 되기엔 정치적 배경이나 이력이 지나치게 강성이라는 평가다. 플로리다국제대학 잭 고든 공공정책연구소의 임다트 오네르 연구원은 CNN에 “그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자로, 마두로 정권의 가장 강경한 인물 중 하나”라며 “향후 행보는 민주적 전환이 아닌 권력 연장의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으로 베네수엘라 권력 구도 전반이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드리게스를 중심으로 그의 친오빠인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 등이 향후 국가 운명을 좌우할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다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야권 지도자의 입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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