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느려도 괜찮아" "말 못해도 돼"…값싸고 맛좋은 그 식당의 비밀

중앙일보

2026.01.05 12:00 2026.01.05 12:3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일하는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안산점. 느린 행동을 하는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상 서비스가 더딜 수 있다는 점을 손님들에게 알리기 위해 상호에 느리다는 뜻인 '슬로우(Slow)'를 넣었다. 최모란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안산점. 입구 앞에 있는 키오스크로 손님이 다가오자 점원 A씨(20대)가 느린 말투로 이용 방법을 천천히 설명했다.
A씨는 ‘경계선 지능인’이다. 또래보다 학습능력, 어휘력, 사회적 지식습득 속도가 느리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느린 행동 등으로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안산점엔 이런 경계선 지능인 청년 4명이 일한다. A씨는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선 느리다고 해고를 당했는데 식당 손님들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며 “일하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고 했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안산점에서 판매하는 김치찌개. 최모란 기자

청년밥상문간은 2015년 고시원에서 굶주림 끝에 삶을 달리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계기로 탄생한 식당이다. 2017년 12월 서울 정릉점을 시작으로 이화여대점, 낙성대점, 대학로점에 이어 지난해 2월엔 안산점이 문을 열었다. 이중 대학로점과 낙성대점, 안산점에서 20명의 경계선 지능인이 일한다.

메뉴는 단돈 3000원인 김치찌개 하나. 저렴한 가격에 점심시간이면 20여석 규모의 테이블은 금방 만석이 된다. 대학생 등 청년부터 60대 이상 어르신까지 하루 평균 30~40여명이 방문한다. 단골이라는 정예지(23·여)씨는“맛있고 가격도 싸서 매주 2~3회는 온다”며 “최근엔 아낀 식비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임태일(46) 안산점 점장은 “경계선 지능인 청년이 비장애인보다 느린 것은 맞지만 성실하고 한 번 가르친 일은 정확하게 한다”고 말했다. 청년밥상문간은 올해 7월 이화여대점을 슬로우점으로 전환하는 등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일자리를 늘릴 예정이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안산점에서 일하는 경계선 지능 청년. 사진 안산시 부곡종합사회복지관



포항엔 필담·손짓으로 대화하는 수화식당

경북 포항시 북구에는 ‘말이 필요 없는’ 식당이 있다. 직원 상당수가 청각·언어장애인인 수화식당이다. 7000원만 내면 다양한 한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으로 운영된다. 손님들은 말보다는 손짓과 필담 등으로 직원들과 대화한다.

수화식당이 문을 열게 된 계기도 ‘일자리’였다. 비장애인과 의사소통이 어렵다 보니 청각장애인도 취업이 어렵다. 김소향(50) 수화식당 대표는 “청각장애인 중에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많다”며 “음식 솜씨가 좋은 40대 청각장애인 여성 4명과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식당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수화식당은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뷔페다. 수화식당 김소향 대표 제공

2017년 9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손님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하루 총 매출이 7000원, 1만4000원이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손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줄 서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처음엔 의사소통을 걱정하던 손님이 많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손짓·필담 주문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수화식당은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뷔페다. 수화식당 김소향 대표 제공
손님이 늘면서 수화식당의 덩치도 커졌다. 인근에 2호점이 문을 열었고, 몇 년 전부터는 출장뷔페와 케이터링 사업도 시작했다. 청각장애인 4명으로 시작했던 직원 수도 12명(청각장애인 5명, 지적장애인 1명, 비장애인 6명)으로 늘었다. 아르바이트생도 8명(전원 청각장애인)이나 된다. 김 대표는 “기초생활수급자인 비장애인 등을 채용하면서 소통 문제 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장보기, 배송 등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오히려 시너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수화식당의 연간 매출은 10억~1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률은 2022년 50.3%에서 2023년 49.8%, 2024년 48.4%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전국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카페는 104곳 정도이고, 장애인으로 이뤄진 식당은 손에 꼽는다. 이성구 청년밥상문간 사무국장은 “국내 경계선 지능인은 700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장애로 인정받지 못해서 관련 지원 조례나 법도 없다”며 “경계선 지능인이나 장애가 있다고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최모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