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노트북을 열며] ‘바이든-날리면’과 당원 게시판

중앙일보

2026.01.06 07:1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허진 정치부 기자
한동훈 전 대표를 둘러싼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사건을 관조해보면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전 대표가 일찍이 사과했으면 정치적 파급력은 진작에 소멸됐을 일이었던 까닭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이번 사건은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2022년 9월 당시 방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그 일이 그리 커질 줄 몰랐을 것이다. ‘○○○’ 부분을 두고 일부 언론은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았고, 대통령실은 ‘날리면’이 맞다고 반박하며 법적 공방까지 이어졌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문제를 대하는 윤 전 대통령과 용산의 태도에 실망했다. 진실 공방으로 갈 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과 어떻게든 대화를 해보려는 간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비속어가 나왔다’고 했다면 아마 많은 국민이 이해하고 넘겼을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피해가 우려되던 상황에서 떠났던 뉴욕 순방이었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 1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최근 당원 게시판 사건도 큰 틀에서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 전 대표 본인을 비롯해 그 가족이 실제 당원 게시판에 글을 썼는지, 썼다면 얼마나 수위 높은 글을 썼는지가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특히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에겐 말이다.

하지만 비교적 많은 사람은 실제 글을 썼느냐보다 그 문제를 대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썼냐, 안 썼냐’는 표현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밈이 됐을 정도로 한 전 대표는 이 문제를 회피하다가 당무감사위원회가 감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는 발표 내용 조작 의혹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볼 수밖에 없는 대처다.

‘바이든-날리면’ 사태의 또 하나의 교훈은 간언하는 참모가 절실하다는 점이다. 리더도 사람인 만큼 무오류에의 집착은 화를 부른다. 당시 홍보수석의 “다시 한번 들어보십시오” 발언은 그의 흑역사로 남았다. 한 전 대표의 측근들이 ‘한동훈 팬덤’의 관리자가 아닌 정치적 참모라면 이 문제를 풀어갈 현실적 방안을 조언해야 한다. 진심 어린 사과라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돼야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에게 퇴로를 열어 줄 최소한의 명분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구성 단계부터 수렁에 빠진 모양새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지금이 매듭을 풀기에 가장 빠른 때다.





허진([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