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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90년 전 금·은 전쟁, 다시 시작됐다

중앙일보

2026.01.0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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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정부가 국민의 금을 강제로 사들인 뒤, 가격을 올려 차익을 챙긴다면 어떨까. 1933년 미국에서는 이것이 실제 정책이었다.

그해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행정명령 6102호를 통해 금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개인이 보유한 금화와 금괴를 온스당 20.67달러에 강제 매입해 미 연방준비제도로 이송했다.

이듬해 1월 루스벨트는 ‘금지불준비법(Gold Reserve Act)’에 서명했다. 금을 국고에 예치하는 한편, 금의 공식 가격을 온스당 35달러로 인상했다. 금에 연동해 발행되던 달러화의 가치는 하루아침에 41% 평가절하됐다. 통화 가치를 낮춰 경제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계산이었다.

정책은 은으로 확장됐다. 1934년 6월 시행된 ‘은매입법(Silver Purchase Act)’에 따라 정부는 은을 대규모로 매입해 국고에 편입했다. 지불준비자산의 25%를 은으로 채우도록 하면서, 달러는 금뿐 아니라 은을 기반으로도 발행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국내 매입과 수입을 통해 1938년까지 수억 온스의 은을 확보했다. 금 가치 재평가와 은 매입은 통화 공급을 늘리기 위한 의도된 선택이었다.

배경은 대공황이었다. 1929년 뉴욕 증시 붕괴 이후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실업률은 25%에 달했고, 가계는 구매력을 잃었다. 물가는 하락했고 수요는 마비됐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해 수요를 끌어올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용을 늘리고 실업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를 정책으로 옮겼다. 뉴딜 아래 대규모 공공사업과 사회보장제도가 추진됐다. 특히 국고 보유 금의 가치 인상으로 발생한 약 28억 달러의 재평가 이익은 재정 지출을 뒷받침하는 재원이 됐다.

미 정부는 재정정책과 함께 통화팽창정책을 병행했다. 은을 매입할수록 더 많은 달러가 시중에 풀렸고, 통화량 증가는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발판이 됐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은 가격은 1934년 온스당 44센트에서 이듬해 77센트까지 급등했다. 은본위 제도를 채택한 중국에서는 은의 국외 유출이 빨라졌고, 통화 가치 절상으로 디플레이션이 오히려 악화했다.

최근 금과 은 가격이 다시 급등하고 있다. 중국 등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와 중국 정부의 은 수출 통제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케인스는 루스벨트의 귀금속 집착을 “야만적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위기의 해법은 반복되지만, 그 부작용 역시 되풀이된다. 역사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종 같은 운율로 돌아온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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