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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마켓 나우] AI 시대의 역설, 비효율이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2026.01.08 07:12 2026.01.0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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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AI 시대의 생존법은 역설적이다. 효율성의 극대화가 아니라, 일정 부분의 의도적 포기에서 길이 열린다.

지난달 미국 대형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때 아마존에 밀려 ‘멸종’이 예고됐던 이 회사는 현재 7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한다. 2024년과 2025년에 각각 60곳 이상 새 매장을 열었고, 올해도 비슷한 속도의 확장을 계획 중이다.

업계는 이를 단순한 경기 회복으로 보지 않는다. 디지털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오프라인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반스앤노블이 비교적 분명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언론·교육·사무 전반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과 반복적 문서 작성, 체계화·정형화된 업무는 이미 자동화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이른바 ‘문과 전문직 3대장’마저 미래의 직업별 분류 코드에서 삭제될 운명이라는 ‘호들갑’도 있다. 반스앤노블의 반전은 이런 단선적 예측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마존이 도서 유통 산업의 본질을 ‘속도와 가격’으로 규정했다면, 반스앤노블은 다른 길을 택했다. 검색 알고리즘 대신 오프라인 매장을 ‘산책’하며 책을 고르는 시간, 다소 비효율적인 동선, 계획에 없던 책과의 우연한 조우에 가치를 부여했다. 효율을 극대화한 디지털 검색에 맞서 ‘의도된 아날로그 감성의 비효율’로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

핵심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소비자의 경험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 종이 냄새, ‘도서 소믈리에’ 직원의 짧은 추천, 매장 안의 커피 향, 가족과 함께 책을 고르던 기억은 알고리즘이 복제할 수 없다. 반스앤노블은 바로 이 인간적 감각을 경쟁력으로 삼았다.

이 교훈은 한국의 전문직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자동화가 불가피한 영역이 있지만, 복잡한 윤리적 판단과 이해관계가 얽힌 협상, 신뢰를 전제로 한 조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전략적 판단과 ‘휴먼 터치’가 필요한 고부가가치 영역은 오히려 AI 시대에 더 또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AI와 효율 경쟁을 벌이는 데 있지 않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 온기, 비효율의 가치, 우연의 즐거움을 지키는 데 있다. 반스앤노블의 부활은 한 서점 체인의 성공담을 넘어, 디지털 홍수 속에서도 인간다움이 여전히 진짜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이 말이 시사하듯, AI라는 도전도 인류의 새로운 응전을 불러내고 있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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