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IT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던 행사는 컴덱스(COMDEX)였다. 1979년 ‘컴퓨터 딜러 전시회’로 출발한 컴덱스는 PC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몸집을 키웠고, 정점이었던 2000년에는 관람객 20만 명, 참가 기업 2300여 개를 기록하며 CES를 압도했다.
그러나 PC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한 탓에 모바일·가전·자동차 등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과도한 참가비·임대료 인상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인텔 등 핵심 기업들의 이탈을 불러왔고, 결국 2003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완전히 차지한 것이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소비자 가전 전시회)다. 1967년 뉴욕에서 오디오와 TV 중심으로 출범한 CES는 1970년 VCR을 처음 선보이며 대중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라스베이거스로 행사장을 옮긴 뒤에는 CD·DVD, 디지털 TV, 노트북, 게임 콘솔, 디지털카메라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을 공개하며 기술 트렌드를 정의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잠재적 경쟁자였던 컴덱스가 사라지고 IT 산업의 융복합이 본격화된 2000년대는 CES의 전성기였다. 글로벌 기술 사이클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연례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과 LG 등 국내 가전 기업들이 CES를 글로벌 마케팅의 핵심 무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2006년 삼성전자가 CES에서 ‘보르도 TV’를 공개한 후 소니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 상징적 사례다.
하지만 CES 역시 도전을 피하지는 못했다. 2010년대 들어 IT 산업의 중심이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행사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관심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로 분산됐다. 여기에 2020년대 초 코로나19 팬데믹은 행사의 연속성을 끊어놓았다.
연이은 위기 속에서 CES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모빌리티 산업의 급성장이었다. 기존 모터쇼들이 침체되는 사이, 자율주행과 전기차 기술을 선보일 새로운 무대를 찾던 완성차 업체들이 CES로 몰려들었다. CES를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본격적인 AI 시대의 도래는, CES를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개별 제품이 아니라, AI로 연결되는 스마트 시티, 스마트 홈, 스마트 팩토리 등 거대한 AI 생태계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 CES 이후 국내 참가 기업들의 주가가 눈에 띄게 움직인 것 역시, 이러한 CES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