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9월 8일, 테헤란 잘레 광장은 피로 물들었다. 팔레비 국왕의 강압 통치와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군이 발포해 수백 명이 숨졌다.
국영석유회사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석유 생산이 80% 넘게 급감했고, 정부는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세계 원유 생산의 10%를 차지하던 이란의 공급이 끊기자 국제유가는 세 배로 뛰었다.
이듬해 초 국왕은 망명했고 호메이니가 귀국해 최고지도자로 추대되었다. 군주국가 이란은 신정국가로 탈바꿈했다. 그해 가을 미국이 국왕의 망명을 허용하자, 격앙된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1981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지루한 협상 이후에야 444일간 억류된 인질 석방에 합의할 수 있었다. 미국은 그 대가로 이란이 해외에 예치한 100억여 달러 규모의 자산 동결을 해제했다.
미국을 상대로 승리한 이란 젊은이들은 승리감에 도취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4년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경제 제재에 나섰다. 이란-이라크 전쟁과 경제 제재로 물가가 급등했고 생필품 부족이 심화했다.
1984년 10% 안팎이었던 인플레이션은 전쟁이 종료한 1988년 30% 부근까지 급등했다. 종전 후 물가는 한 자릿수로 안정되는 듯했으나 일시적이었다. 이란이 핵 개발에 나서자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더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인플레이션은 50%로 악화됐고 리알화 가치가 급락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핵 합의(JCPOA)가 성사되면서 물가는 한 자릿수로 안정되었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하여 ‘최대 압박’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상황은 다시 나빠졌다.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고 금융결제망까지 틀어막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원유 거래에 나서는 국가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언급하며, 중국 등을 포함한 ‘그림자 거래망’ 차단 의지를 노골화했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환율은 달러당 4만여 리알에서 100만 리알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물가는 급등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향해 치닫고 있다. 금리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연체율도 거침없이 상승해 금융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신정체제의 중핵인 혁명수비대의 부패도 상황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과거 이슬람 혁명에 나섰던 중장년층은 좌절했다. 제재가 강화될 때마다 생활고에 직면했던 이란은 큰 갈림길에 섰다. 이란의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남긴다. 대미 관계 개선이 경제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