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2일 5·18 민주화운동 유족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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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헌재서 “5·18 보상법 위헌” 판단 후 소송 제기
소송의 원고들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행·구금·고문으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 가족들이다. 이들은 1990년대에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보상금과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등을 받았다. 당시 법에는 “보상금을 받은 경우 화해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었고, 보상금을 지급하며 국가는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시 청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이 규정에 따라 당시 보상금을 지급받은 유족들은 별도의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나 헌법재판소는 2021년 5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부분까지 화해가 성립됐다고 보는 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5·18 보상법의 보상 범위에는 정신적 손해가 포함돼 있지 않은데도 이에 대한 청구권까지 막았다는 취지다. 이후 제기된 소송에서 정부는 “이미 국가배상 단기소멸시효(3년)가 지났다”고 주장했고, 가족들은 “그동안 법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은 갈렸다. 1심은 유족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청구권 소멸시효가 헌재에서 관련법을 위헌으로 판단한 2021년 5월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소멸시효는 늦어도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을 받은 날(1990년대)부터 진행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원고들의 채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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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합 “위자료 청구권 완성되지 않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1인의 다수의견으로 이같은 항소심 판단을 다시 뒤집고 유족들 손을 들어줬다. 전원합의체는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1990년·1994년)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다”며 “위자료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은 2021년 5월 27일 헌재의 위헌 결정을 소멸시효 기산 시점으로 잡았다. 전원합의체는 “원고들에게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기까지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했다”며 “위헌결정을 통해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 대한 장애사유가 비로소 제거됐다”고 봤다.
아울러 “가해자인 국가가 배상 관련법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국가배상의 법률관계를 복잡하고 불명확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피해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게 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권리행사 가능성은 일반적인 피해자라면 국가에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가족들이 1990년대에는 보상금과 별도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원고들은 위헌결정일인 2021년 5월 27일까지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며 “위헌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2021년 11월)에 소를 제기했으므로 청구권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는 노태악 대법관의 반대의견과 오경미 대법관의 별개의견이 있었다. 노 대법관은 “현재의 법리로서는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오 대법관은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완성됐지만, 국가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해 파기돼야 한다”며 원고 승소의 근거를 달리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