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차림의 인상 좋은 60대 남성이 진료실로 들어섰다. 낯익은 얼굴에 혹시 방송으로 보았던 교수님이 맞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움도 잠시, 그의 고민은 원인 모를 체중 감소였다. 이미 유명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해 답답해했다. 의심되는 질병이 있어 바로 복부 CT 검사를 의뢰했다.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혈관까지 침범한 5㎝ 크기의 췌장암이 발견되었다.
각각 치명률·사망률 1위인 암
당뇨인 줄 알았다가 췌장암 진단
폐암, 자각증상 없는 경우 많아
또 다른 환자의 사례도 기억에 남는다. 타 병원 건강검진에서 당뇨병을 진단받아 치료를 위해 내원한 환자다. 종합검진을 마친 상태였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당뇨병약을 처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황달 증상으로 다시 찾아왔다. 검사 결과는 역시 췌장암이었다. 나름대로 신속히 진단해 냈지만 가슴 아프게도 두 환자 모두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췌장암은 치명률이 높은 암이다. 치명률이란 해당 질병에 걸린 환자 중 사망에 이르는 비율을 말한다. 보통은 5년 상대생존율로 가늠한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6.5%에 불과하다. 전체 암 평균이 72.9%인 점을 고려하면 췌장암은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반면에 사망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무서운 암의 순위가 달라진다. 암 사망률은 전체 인구 10만 명당 해당 암으로 사망한 사람 수를 나타낸다. 국내 사망률 1위의 암은 폐암이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폐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8.0명이다. 전체 암 사망자의 약 21.8%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1위다. 췌장암은 사망률 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췌장암 발생 빈도가 폐암보다 낮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췌장암은 일단 걸리면 가장 치명적인 암, 폐암은 국내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암이다.
이 두 암엔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마치 소리 없는 저격수처럼 우리 몸을 조용히 파고들기 때문이다. 흔히 가슴 통증을 느끼면 폐암을 의심하지만, 정작 폐 내부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어 암세포가 웬만큼 커질 때까지 자각 증상이 없다. 만약 가슴 통증이 느껴진다면 이는 암세포가 폐를 넘어 흉막이나 갈비뼈까지 침범했다는 위중한 신호일 수 있다.
폐암이 의심되면 흉부 엑스레이(X-ray)를 찍지만, 이 검사만으로는 조기 폐암 진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암이 작거나 심장·갈비뼈·횡격막 뒤에 숨어 있으면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를 보완하는 저선량 흉부 CT가 보급되고 있다. 방사선 노출은 줄이면서도 미세 결절까지 정밀하게 포착해 낼 수 있어 훌륭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췌장은 우리 몸 깊숙이 위치해 암 진단이 까다롭다. 복부 초음파는 장내 가스에 가려 췌장 전체를 보기 어렵고 해상도 한계로 2㎝ 이하의 미세 종양을 포착하기 쉽지 않다. 복부 CT나 MRI가 대안이지만 비용, 방사선 노출, 조영제 부작용을 고려해 일반인 선별검사로는 권고하지 않는다.
이 암들이 증상이 애매하고 치명적이긴 하지만 우리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 조기 발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췌장암의 대표적 경고 신호는 황달, 등과 허리로 뻗치는 복통, 급격한 체중 감소, 소화효소 부족으로 인한 지방변이다. 특히 중년 이후 특별한 원인이나 가족력 없이 갑자기 당뇨병이 생기거나 기존 당뇨병이 급격히 악화한다면 췌장암의 가능성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폐암은 흡연력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흡연한 고위험군은 증상과 상관없이 항시 폐암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금연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흡연 과정에서 발생한 세포 변이와 누적된 암 발생 위험은 금연 후에도 장기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3주 이상 지속하는 기침, 피 섞인 가래(객혈), 목소리 변화, 체중 감소가 나타나면 감기나 피로로 넘기지 말고 즉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30갑년(하루 한 갑씩 30년 흡연) 이상 흡연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2년마다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지원하고 있다.
암은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로 국민 4명 중 1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위협적인 존재다. 특히 췌장암과 폐암은 빠른 의심과 정밀한 진단이 예후를 좌우하는 만큼 ‘괜찮겠지’라는 안심으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몸의 작은 변화에 귀 기울이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습관만이 소리 없는 암으로부터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다행히 이들 암의 생존율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완치를 향한 희망도 함께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