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3시 중국 인민해방군 수뇌부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인사 지진이 일어났다. 중국 국방부가 장유샤(張又俠·76)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류전리(劉振立·62) 중앙군사위원 겸 연합참모부 참모장을 ‘엄중한 기율·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로써 지난 2022년 10월 출범한 20기 중앙군사위는 시진핑(習近平·73) 중앙군사위 주석을 필두로 한 7인 체제에서 3년 3개월 만에 시 주석과 지난해 10월 부주석으로 승진한 장성민(張升民·68)만 남는 2인 체제가 됐다. 1927년 인민해방군 건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중앙군사위에선 2023년 리상푸 국방부장(장관) 겸 중앙군사위원이 실각한 것을 시작으로 먀오화 중앙군사위원 겸 정치공작부 주임과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잇따라 낙마했다. 크리스토퍼 존슨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국 분석가는 “중국군 역사에 전례가 없는 최고 지휘부의 완전한 궤멸”이라고 평가했다.
25일 군 기관지 해방군보와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 사설에서 장 부주석과 류 참모장의 낙마 혐의로 군 통수권 도전을 명시했다. 사설은 “장·류는 중앙군사위 주석 책임제를 심각하게 유린·파괴했다”며 “당의 군대 절대 영도에 심각한 영향을 조장했고, 당의 집권 기초인 정치 및 부패 문제에 위해를 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의 권위를 통한 군 통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방부는 이번 조사 결정을 “당 중앙의 연구를 거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허웨이둥 부주석 등의 처분 발표문에선 주체를 중앙군사위 기율·감찰기구로 명시했다.
이번 사설은 허웨이둥·먀오화 낙마 당시보다 논조가 훨씬 심각하다. “수뢰액이 특히 막대하다” “직무범죄”, 시진핑 1기에 숙청했던 “궈보슝·쉬차이허우의 남겨진 독이 발효·변이했다”며 전형적인 부패와 군내 잔존세력 청산으로 규정했던 것과 장·류 사건은 사안의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다.
사설은 그러면서 “중앙군사위 그룹 이미지와 위신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으며, 당과 국가, 군대에 극히 악랄한 영향을 끼쳤다”며 “기율과 법률에 따라 장유샤와 류전리를 조사해 정치적 근본을 바로잡고 사상적으로 독과 폐단을 제거하고, 조직적으로 썩은 살을 제거해 새 살을 돋게 하겠다”며 대대적인 추가 숙청을 예고했다.
웨이링링 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 전문기자는 이날 X(옛 트위터)에 “장유샤와 류전리를 통해 승진한 수천 명의 장교가 숙청 대상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장교들은 휴대폰을 압수당한 채 모든 부대가 경계상태에 들어갔다”며 향후 파장을 우려했다.
장 부주석의 체포로 시 주석의 군부 숙청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홍이대(紅二代, 혁명원로의 자손)이자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인 장유샤는 2017년 19차 당 대회 이후 9년 넘게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를 지키며 군부 실세로 군림해 왔다.
지난해 6월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X에 “중국에서 권력 이동이 벌어졌다”며 제기했던 ‘시진핑 실각설’의 중심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군부 내 시 주석 측근 인사들이 부패 혐의로 잇따라 낙마하면서 일각에선 ‘장 부주석이 군부에서 측근들을 내쫓으며 시 주석을 사실상 실각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이원쉬안(蔡文軒) 대만중앙연구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장유샤 낙마는 시간문제였다”며 “군사위 주석은 더는 누구도 신뢰하지 않으며, 장유샤 실각은 군내 홍이대와의 공개 결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해방군보는 사설에서 “‘철모자왕(鐵帽子王)’은 없다”고 밝혔다. 닳지 않는 철모자를 쓴 왕이란 뜻의 ‘철모자왕’은 작위가 세습되는 청(淸)나라 황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 부주석마저 실각하면서 군은 시 주석 1인 체제가 공고해질 전망이다. 커우젠원(寇健文) 대만 정치대 교수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고독한 지도자’의 자리가 됐다”며 “과거 교류나 친분을 맺었던 군 간부조차 신뢰할 수 없으며,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승진자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시 주석은 장·류 파벌은 물론 허웨이둥과 먀오화 잔존 세력에 대한 전군 차원의 청산 운동을 펼칠 전망이다. 일각에선 1975년 이후 출생한 소장파 장성을 수뇌부로 발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예정대로 군 개편에 성공할 경우 내년 하반기 당 대회로 예정된 21차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4연임은 사실상 확정될 전망이다. 치러이(亓樂義) 대만 국방안전연구원 특약연구원은 “인민해방군 전체가 개편되고 재편성되면 향후 군내 파벌 형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야심 찬 중장 이하 장군이 조기에 전면에 나서면서 시진핑 4연임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숙청이 군 사기 저하와 지휘 혼란을 부르는 ‘양날의 검’이란 우려도 나온다. 장유샤와 류전리 등 실전 경험을 가진 장성의 잇단 숙청이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이어져, 중국군의 지휘ㆍ훈련ㆍ작전 능력에 공백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데니스 와일더 중국 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현재 상황은 미 합동참모본부에 장군이 단 한 명만 남은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군내 숙청이 이어지면서 군내 사기가 떨어지고 중장기 군사 발전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로 인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 주석이 외부와의 전쟁 준비보다 내부 기강 확립과 충성 강화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를 위해 새로 임명된 전구 사령관과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연합작전센터의 신임 지휘관은 작전 체계 파악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장 부주석과 류 참모장의 체포설은 지난 20일 퍼지기 시작했다.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열린 장관급 주요 간부 회의와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 확대 회의에 두 사람이 모두 참석하지 않으면서다. 24일 국방부가 장 부주석과 류 참모장에 대한 조사를 발표한 직후 신화사·중국중앙방송(CC-TV) 등 관영 매체는 동정란에서 두 인물의 관련 기사를 삭제하며 영향력 지우기에 나섰다. 24일 국방부 발표를 인용해 장 부주석과 류 참모장의 낙마를 공지했던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의 해당 페이지 역시 25일 현재 삭제된 상태다.
체포 당시 상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만 연합보는 25일 “장·류 2인의 낙마는 직급과 직위를 볼 때 비밀보장이 필수여서 사흘 전에서야 소문이 흘러나왔다”며 “19일 ‘연행’된 인물은 모두 17명으로 중사오쥔(鐘紹軍·58) 전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이자 국방대 정치위원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 “장유샤·류전리·중사오쥔 모두 부부 2명이 동시에 연행됐으며 가택 조사가 이뤄졌다”며 “장유샤의 아들 장선(張申) 현임 육군연구원 부사단장급 연구원, 장유샤의 전직 비서 왕샹룽(王向龍)도 함께 연행됐다”며 향후 수사가 가족 및 직속 부하로 확대될 것임을 예고했다.
체포 작전의 책임자도 관심의 대상이다. 일각에서 저우훙쉬(周洪許·55) 중앙경위국장이 거론된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데니스 와일더 조지타운대 교수는 24일 “저우훙쉬가 이번처럼 섬세한 체포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중앙군사위원회 진급을 위해 시진핑에게 충성심을 증명한 것”이라고 X에 밝혔다. 또 다른 한 명은 열병식을 주도한 공군 장군으로 그는 장유샤 파벌의 일원은 아니라고 했다. 현역 소장인 저우 국장은 지난 2021년 북부전구 부참모장에서 중국의 ‘비밀경호국’ 책임자 격인 중앙경위국장으로 영전했다. 저우 국장은 북부전구의 전신인 선양군구 사령관을 역임한 장유샤의 직계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한편 지난 20일 장관급 세미나 개막식에 불참했던 스타이펑(石泰峰·70) 중앙조직부장은 23일 세미나 종강행사에 차이치(蔡奇·71) 정치국상무위원과 함께 참석했다고 CC-TV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