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도, 외국인 대표이사는 국회에 나와 책상을 치며 “그만하라”며 큰소리를 쳤다. 그 배경에는 쿠팡의 절대적인 시장 지배력이 있다. 현대인에게 의식주에 더해 스마트폰이 필수품이듯, 한국에선 쿠팡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서비스가 됐다. 이 판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엄연한 현실이다.
규제 만능 정치가 유통시장 왜곡
대형마트 쉬어도 쿠팡 24시 영업
과도한 규제 풀어야 시장 정상화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대중영합적 규제에 기댄 정치권의 선택이 그 출발점이었다. 국회는 2012년 전통시장 보호를 내세워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했고, 그 결과 국내 대기업을 겨냥한 대형마트 규제가 본격화됐다. 대형마트는 격주로 일요일마다 의무휴업해야 했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도 금지됐다. 그러나 재래시장도, 골목상권도 기대만큼 살아나지 못했다. 소비 흐름은 이미 대형마트 중심으로 이동해 있었고, 곧이어 등장한 배달 플랫폼은 그 변화를 더 가속했다.
대형마트 규제로 소비자는 불편을 겪었지만, 수요가 전통시장으로 옮겨가지는 않았다. 주차 여건, 상품 구성 등에서 대형마트의 장점을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책 효과가 확인되기 전에는 완화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규제는 계속됐다. 선거로 국회의원 얼굴이 바뀌어도 이 같은 명분은 흔들리지 않았고, 규제는 성역이 됐다.
그러는 사이 쿠팡이 부상했다. 아마존처럼 전국 단위 물류망을 구축한 쿠팡이 한국 유통시장을 사실상 장악하는 데는 4~5년이면 충분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토종 업체들이 규제로 손발이 묶인 사이, 쿠팡은 24시간 돌아가는 유통 체계로 영향력을 키웠다. 초기에는 막대한 적자를 감수해야 했지만, 시장 장악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던 중 터진 코로나19는 쿠팡에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하면서 문 앞 배송은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을 장악한 쿠팡은 와우 멤버십 월 이용료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큰 폭 인상했지만, 소비자는 저항하지 못했다. 국회가 만들어준 ‘쿠팡만의 유통 천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토종 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 중심 구조에 묶여 신속한 전환이 어려웠다. 이들은 쿠팡 등장 이전부터 진행돼 온 디지털 전환 흐름 속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쿠팡이 세력을 키워가던 시기에 국내 사모펀드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외환위기 특수가 끝난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주춤한 사이, MBK는 대형 매물을 잇달아 인수하며 국내 최대 사모펀드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MBK는 경쟁력을 끌어올린 뒤 재매각하는 사모펀드의 순기능보다 높은 투자수익률에 무게를 두고, 과도한 차입을 동원해 홈플러스 인수에 나섰다.
홈플러스의 경쟁력은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수천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고, 직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국 과도한 차입 구조가 홈플러스 정상화를 가로막은 셈이다. 이 과정에서 경영 실패의 위험을 채권 투자자들에게 전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MBK는 관련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유통산업의 급격한 구조 변화도 작용했다. 결정적 변수는 쿠팡의 부상이었다. 쿠팡이 24시간 주문을 받고 새벽에도 배송하는 동안, 홈플러스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감내해야 했다. 국내 대표 사모펀드로 성장한 MBK조차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구조적 환경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규제가 초래한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네 개인 마트는 물론 편의점 자영업자들까지 고객 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1000원짜리 이쑤시개 한 통조차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소비 패턴이 일상화된 결과다.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안을 통상 문제로 확대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미국 정치권에 얼마나 많은 로비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부 하원의원들은 한국 정부를 향해 “마녀사냥 중단하라”고 쿠팡을 두둔하고 나섰다. 쿠팡의 미국 주주들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S) 의향서를 정부에 보내와 “한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성공적인 미국 기업의 능력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펴고 나섰다.
이런 갈등의 뿌리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낸 왜곡된 시장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국회는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규제를 재검토하고,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그래야 골목상권도 숨 쉴 공간을 찾고, 미국 기업 쿠팡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시장 구조도 바로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