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훈 칼럼] 보수의 ‘베풀지 못한 죄’

중앙일보

2026.01.25 07:30 2026.01.25 18:0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최훈 대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한덕수 전 총리에의 사형 구형과 23년형 선고는 한국 보수 정치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엄 선포는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는 국민의힘 대표의 성찰 수준으론 사망선고를 받은 한국 보수 정치의 회생은 불가능할 뿐이다. 처절한 참회, 결연한 각오라곤 찾기 힘든 참담한 보수 정당이다.

이준석 이어 한동훈 배제까지
‘쓴소리’‘세대교체’ 거부 고착
미래 차세대 주역들 못 키우면
보수 정치는 진보에 백전백패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결심공판의 모습. 연합뉴스
보수 정치의 ‘죄’에 대한 신랄한 지적은 오히려 보수주의 이론가인 박효종 전 교수로부터 나왔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죄’ ‘지키기만 하고 가꾸지 못한 죄’ ‘자기 성취만 탐닉하고 자기 초월을 못한 죄’ ‘베풀지 못한 죄’ ‘특권을 오남용한 죄’를 보수의 다섯 가지 죄악으로 꼽았었다. 이 모든 죄의 귀결이 바로 ‘세대교체’의 실패였다. 스스로는 대선후보를 시킬 이조차 없는 정당으로 쇠락해 누군지도 잘 모른 ‘용병’ 윤석열을 앉혔다가 이토록 험한 꼴을 맞고 말았다. 당 밖의 김문수, 재집권 신기루에 한덕수까지 급조하려던 보수 정치의 허둥지둥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건 그러니 응보(應報)였다. 사람이 없는데 그 이념이, 정당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오히려 세대교체가 활발했던 때는 한세대가 더 지난 3김 시대였다. 60대의 김영삼(YS) 대통령은 30~40대 개혁 이미지의 이인제·김문수·손학규·홍준표·오세훈 등을 영입, 지금껏 보수 정치의 명맥이라도 이어가게 했다. 김대중(DJ) 대통령 역시 야당 때부터 20~30대인 김민석·이인영·우상호·임종석 등을 영입, 최근까지 총리(김민석)와 정무수석(우상호) 등 진보 정치의 주축을 가꿔 놓았다. ‘40대 기수론’이란 세대교체의 선구였던 양김의 깨달음 때문이기도 했다. 41, 45세이던 1969년 대선후보 출마 선언을 한 YS와 DJ는 “젊은 군부에 비해 야당 지도자들의 노쇠로 정권교체가 좌절됐다”며 “젊고 역동적 세대가 나서자”고 맞장구를 쳤다. 64세인 유진산 신민당 총재는 “젖 비린내 나는 정치 미성년자”라고 일축했으나 3선 개헌에 좌절한 국민으로부터 폭발적 시너지를 얻은 양김은 결국 미래의 희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의 50대 이상은 22.62%(현재는 45.67%)에 불과, 40대 이하가 주축인 나라였다. 차기 대선에 54세가 되는 박정희 대통령까지 겨냥한 두 젊은 정치 천재의 승부수가 세대교체였다.

이후 한국 진보와 보수 정치의 성패를 가른 키워드도 세대교체였다. 진보는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민주화·학생운동 경험을 공유한 선두 세대가 계속 30~40대 세대를 키워 가며 세대교체에 성공해 왔다. 의원 보좌진, 기초단체·의회에 진입시킨 뒤 광역단체·국회로 육성해 가는 코스였다. 유럽형 현장 정치다. 한 번 실패해도 계속 정치를 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현장과 정책을 접해 온 장점을 갖게 됐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다. 반면에 보수는 법조인·관료 등 사회의 노·장년 기성 엘리트·명망가들이 최고권력자에 의해 낙점, 충원돼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켜가는 구도였으니 세대 간의 크레바스가 생기고 말았다. ‘아래에서 위로’와 ‘위에서 아래로’의 극명한 대비다.

그 결과 민주당 국회의원은 예전의 주력이던 386세대 이후인 1970년대 세대가 81명, 1980년대 23명, 1990년대가 2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의석의 64%, 106명을 젊은 세대로 물갈이한 약진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70년대 이후 세대가 35%인 38명뿐이다. 김재섭(도봉갑 의원) 같은 39세 정치 신예의 등장이 뉴스가 되고 말았다.

정책 어젠다에서도 보수는 역주행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 ‘반공’ 등 모든 이슈에서 강고한 보수인 정통(전통)보수들은 17%로 가장 소규모 보수가 됐다. 반면에 각종 경제·사회 쟁점에선 중도·절충적 태도를 보이면서, 한·미 동맹에는 보수적, 대북정책과 한·중 협력에는 다소 진보적 태도를 보이는 온건보수 집단이 51%로 급증, 보수의 주력이 됐다(신정섭, 2024).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오래된 17% 보수의 눈치나 보며 윤석열의 족쇄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필패다.
36세 당대표가 등장했던 2021년 6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신임 대표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기회도 있었다. 2021년 36세 당 대표의 출현이었다. 청년이 자기 힘으로 권력에 진입한 첫 사건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당 중진, 원로 당원들은 ‘쓴소리 이준석’을 품지 못했다. 세대와 어젠다의 교체를 내쫓고 검사·관료, 골수 당원 구조로 되돌아 갔다. 한동훈 전 대표의 당원 게시판 사건은 물론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수 정치의 자원인 그를 아예 보수에서 제명하는 게 옳은 일인가. 기득권을 위협할 차세대는 모두 제거하는 ‘이준석 시즌 2’ 와 무엇이 다른가.

쓴소리했다고 전 최고위원을 중징계하기보다 윤석열 정권 내내 한마디 쓴소리 없이 자기 성취에 탐닉해 온 그들이 먼저 석고대죄해야 하는 건 아닐까. 품고 베푸는 게 보수다. 그게 진보 정치를 이길 무기다. 마라톤 같은 정치에서 자기 대신 결승선을 통과할 미래 주자들을 부디 씩씩하게 키워 달라. 베풀지 못하는 국민의힘, 아니 보수 정치에 미래란 없다.




최훈([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