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라는 말은 신속함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말이라고 한다. 언어의 유희이지만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할당받은 우리나라의 국가번호가 ‘82’라는 것도 재미있는 우연이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고령화도 빨리 진행되어 2024년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고,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며 주거, 의료, 여가 서비스가 결합 된 실버타운이라는 주거 형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꽃길도 영원하지 않아
지금 내자리가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나의 일터인 실버타운에는 60세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입주자들이 식구가 되어 오순도순 어울려 산다. 다양한 삶의 배경에 서로 다른 종교, 실버타운에 살게 된 사연들이 각각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노병사(老病)死)라는 숙제를 본격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숙제를 푸는 데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력도 관계없으며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피해갈 수도 없다.
인간의 인생 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생로병사’이고, 인생의 내용을 또 한 단어로 말한다면 ‘희노애락’이리라. 원불교 법문에 “사람이 행할 바 도(道)가 많이 있으나 그것을 요약하면 생(生)과 사(死)의 도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살 때 생의 도를 알아야 생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고, 죽을 때에 사의 도를 알아야 도에 맞게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고령화가 되며 신체에 노환이 오는 것과 같이, 마음에는 우울증과 외로움이 자리하게 된다. 실버타운에서 원불교 교무의 역할은 노병사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외로움을 다스리는 법을 안내하고, 희노애락의 감정에 휩쓸려 우울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보살피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입주자께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자며 예쁜 꽃이 핀 화분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가는 곳에 가져다 놓으신다. 화분에는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리본이 달려있다. 실버타운에 입주하신 어머니를 응원하며 자녀들이 보내온 화분이다. 한평생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앞으로 펼쳐질 어머니의 시간들이 꽃처럼 아름답기를, 평안하기를, 미소 지을 일이 많으시기를 희망하는 자녀들의 마음을 이 한 문장에 담았으리라. 인생에 꽃길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야 80년 세월을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더 잘 아시리라. 그럼에도 이 한 문장으로 자녀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화분의 꽃은 곧 질 텐데, 어떻게 꽃길을 이어지게 해드릴 수 있을까?’라는 나의 숙제가 생겼다. 우선 정원과 산책길에 꽃길을 만들었다. 입주하신 어머님 아버님의 손길 닿는 곳, 발길 머무는 곳, 마음 향하는 곳곳에 계절 따라 꽃이 끊임없이 피도록 다양한 꽃을 심었다. 동백꽃·라일락꽃·초롱꽃·국화꽃 등등. 한가지 꽃이 피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계절 따라 다른 꽃, 또 다른 꽃이 뒤를 따라 피어난다. 피고 지는 꽃 위에 한 분 한 분의 인생 이야기꽃이 더해지며 꽃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꽃을 가꾸다 보니 한때 폼 잡으며 읊조렸던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올랐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내가 처한 이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 꽃자리이며,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꽃자리임을 알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이 깊이 전해온다. 꽃길을 아무리 가꿔도 그 꽃길은 영원할 수 없다. 꽃길의 본질은 꽃길을 닦는 마음에 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박중빈은 평생을 통해 쌓은 지식과 명예와 부(富)라 해도 죽을 때에는 하나도 가져갈 수 없으니,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어찌 영원한 내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가진 것을 생사와 관계없이 영원히 내 소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정법(正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니, 서원을 키우고 마음공부에 끊임없이 공을 쌓으라고 하셨다.
원불교에서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원(願)이 이루어지기까지 간절한 마음과 정성을 바치는 것을 서원이라고 한다. 꽃길을 걷게 해드리겠다는 원을 세우고, 꽃길을 만드는데 정성을 쏟는다. 꽃길을 만드는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꽃자리가 되도록 마음에 공을 들인다.
한해가 시작되는구나 했는데, 벌써 1월이 지나갔다.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간다. 노병사의 숙제가 내 앞에 있다. 숙제를 하는 내 마음에 희노애락이 지나간다. 오늘도 내일도 함께 꽃길을 걸으며 노병사의 숙제를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