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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의 시선] ‘모범 동맹’의 무게

중앙일보

2026.01.26 07:26 2026.01.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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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부장
‘실세 차관’인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 차관을 맞이한 한국의 대접은 융숭했다. 26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조찬을 시작으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안규백 국방부 장관 접견이 이어졌다. 안 장관과는 만찬도 함께 해 하루에만 두 번 만났다. 차관 한 명을 맞이하는 데 장관 3명이 총출동한 것이다.

사실 콜비 차관의 카운터파트는 이두희 국방부 차관으로 볼 수 있다. 안 장관은 콜비 차관의 상사인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다. 안 장관이 콜비 차관과 만난 걸 ‘회담’이 아니라 ‘접견’으로 부른 데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이는 시쳇말로 족보가 꼬이는 자리였다.

미 국방전략이 요구하는 건
이스라엘식 안보 홀로 서기
동맹의 달라진 얼굴 낯설어
안규백 국방부 장관(왼쪽)이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오른쪽)과 접견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런데도 안 장관이 직접 나선 건 전쟁부의 미 국방전략(NDS, 23일 발표)이 갖는 함의 때문일 것이다. NDS 설계자인 콜비 차관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다는 뜻이다.

한국이 듣고 싶은 말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은 변함 없다는 약속, 한·미 정상이 도출한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 시트)에 명시된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한 차질 없는 후속 조치, 이재명 정부 임기 내를 목표로 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가속화 등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이 얼마나 모범적 동맹인지에 대한 강조였을 것이다. 이미 정상 차원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지출하는 ‘트럼프식 스탠다드’를 약속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한국과 일본을 순방할 때는 동선 등의 이유로 통상 일본을 먼저 찾는데, 콜비 차관이 한국부터 온 건 그 역시 한국을 모범 동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NDS를 보면 모범 동맹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NDS가 모범 동맹이라고 콕 짚어 여러 번 언급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공격에 미국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반격했고, 영토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바라는 이스라엘식 모범 동맹을 한반도 유사시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결론은 냉혹해진다. NDS가 “미국의 중요하지만 제한된 지원 하에 북한을 억제하는 주된 책임”을 한국 몫으로 규정한 건 곧 북한이 재래식 공격을 가할 경우 사실상 한국이 알아서 감당하라는 뜻일 수 있어서다.

이는 곧 유사시 증원 전력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 다수의 견해다. 이와 관련, NDS는 앞으로 미군은 본토 방어와 대중 견제에 집중하겠다면서 “(한국의) 책임 분담 변화는 주한미군 배치 태세를 현대화하려는 미국 이익과 부합한다”고 했다.

사실상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규모 변경을 시사한 셈인데, 눈길을 끄는 건 책임 분담 변화(shift in the balance)라는 표현이다. NDS는 유럽에 대해서는 “유럽 전구에서 미군의 태세와 역할의 정밀한 조정(calibrate)”을 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해외 주둔 미군의 태세를 점검하는 글로벌 포스처 리뷰(GPR) 결과도 곧 발표될 전망인 가운데 사실상 유럽 주둔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

바꿔 말하면 이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의 임무를 대북 방어에서 대중 견제로 전환하되, 규모는 유지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신 북한이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미군 증원은 제한하겠다는 게 미국의 생각일 수 있다.

우리의 자주국방 역량과는 별개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증원 전력 제한은 심각한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대만 유사시를 가정한다면 오히려 한국이 대만 해협에 증원 전력을 보내는 후방 기지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상 간 만남에서 “올바른 편에 서라”고 직접 한국을 압박했던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원치 않는 분쟁 상황에 휘말리게 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 NDS에 대해 “한반도 안보에 있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를 평가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26일 국방부)는 게 정말 정부 평가의 전부라면 너무 안일하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자부심이 미국의 전략적 방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26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의 모습. 연합뉴스

이제 우리는 어쩌면 그간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동맹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왜?”라고 되묻는 동맹 말이다.





유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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