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붉은 말의 해다. 연극 쪽에선 전쟁터를 누비는 ‘워 호스’ 같은 작품도 있지만, 자유롭게 달리는 말의 기운을 연상하면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가 단연 먼저 떠오른다.
원작이 주는 충격과 강렬한 에너지로 구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한국에서도 화제작이었다. 서울 운니동 실험극장에서 1975년에 초연한 이래 10년 만에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롱런과 재공연에 성공했고, 최근에도 초연 50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에쿠우스’는 말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을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치료하는 내용이다. 출발은 말에 대한 숭배였다. 억압적 부모 밑에서 성장하던 소년은 해변가에서 우연히 말을 탄 뒤 그 야성적인 존재에 열광하게 된다.
‘예수도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자기 암시 속에 소년은 말을 신처럼 숭배하지만, 사춘기라 또래 소녀와의 육체적 사랑에 눈뜨면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마구간에서 소녀와의 사랑에 실패한 소년은 숭배의 대상인 말을 배신했다는 공포와 자신을 감시하는 말의 눈이 무서워 쇠꼬챙이로 말의 눈을 찌른다.
자칫 병적으로 보이는 이 스토리에 관객들은 왜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열광하는 것일까. “의사는 열정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는 다이사트의 고민이 의문을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도 인공지능에게 물어본다. SNS를 통해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온라인상의 인증시스템에 나를 증명하기 위해 기계처럼 노력한다. 그러나 무의식 저 깊은 심연에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말과 한 몸이 되어 땀에 흠뻑 젖도록 이 세상으로부터 달아났던 알런의 자유와 열정이 부러운 것이다.
병오년 새해, 인공지능에 대한 소식만이 아니라 부디 인간도 동물도 자유로운 영혼의 이야기도 들리는 새해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