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로부터 칼럼 연재 제안을 받고 적이 당혹스러웠다. 책을 두 권 내긴 했지만 스스로의 소견이 ‘대롱으로 하늘을 살피고 송곳으로 땅을 측량하려 한다’는 ‘관규추지(管窺錐指)’의 그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필류의 글은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였고, 이 분야의 글을 쓰지 않아야지 하고 맘을 먹었던 기억마저 났다. 그러나 신문사의 청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창작의 맛을 약간 보았기에 곧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기 때문이다.
자존감 잃고 천대받는 이유는
남에게 의지해 탐닉하기 때문
자존은 노력해야 얻을 수 있어
나는 선방에서 참선 정진을 20년 넘게 하다가 현재는 범어사 금정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불교대학에서 기초적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 핵심 책무이다. 이를 위해 고안한 것이 1년간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게 졸업시험을 시험답게 치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시험은 모두 암기 문제인데, 유일하게 논술 문제를 한 문제 냈다. 그리고 지난해 만점 답안지를 주고 같은 문제를 출제하였다.
당연히 작년 만점 답안을 외워 쓰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외워서 쓰면 만점을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다수 학생이 자신만의 답안지를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1, 2, 3, 4’ 번호를 매겨가며 상술하였고, 다른 이는 작년 답안에 자신의 체험과 가치관을 더해 더욱 심도 깊은 답안을 작성하였고, 또 다른 학생은 다른 야간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를 보며 학생들의 독립심과 자존감이 얼마나 높은가를 새삼 절감하였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셨다. 이 세상에서 내가 오로지 홀로 존귀하다는 말이다. 시험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왜 존귀한 것인가?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남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그 근본에 있어서 평등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남쪽 오랑캐가 어찌 불법을 구하고자 하는가’하는 오조 홍인의 질책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지만 불성(佛性)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고 제자인 육조 혜능이 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육조 혜능은 나뭇꾼으로서 오조 홍인을 찾아가 더욱 큰 깨달음을 얻어 선종의 사실상의 창시자가 된 스님이다.
뿌리에서는 평등하고 존귀한 우리가 왜 차별과 천대의 대접을 받는가? 그것은 의지하기 때문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여 존재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끝없이 타자에 의존해서 나고 죽음을 거듭하는 것이다.
당나라의 임제 스님은 “오직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도인이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부처는 의지함이 없음으로부터 나온다. 의지함이 없는 자유로운 본성을 깨닫기만 한다면 부처도 얻을 수 없다” 하였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는가?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에 의지한다. 이러한 것을 마음의 대상으로 삼아 의지한다.
왜 대상에 의지하는가? 탐닉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에 탐닉한다. 이러한 것을 마음의 대상으로 삼아 탐닉하는 것이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구한말의 한국이 온갖 고생 끝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축적했다. 그러나 부유해진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탐닉을 부추기는 사회이다. 감각적 탐닉의 충족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책정하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허전하고, 허전함으로 가득한 욕구 불충족은 분노로 불타오른다. 정신문명은 저하되고 수준의 하락이 뒤따른다.
풍요 속의 대립과 양극화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정신과 물질, 욕구와 억제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대립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강화된 대립은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 어머니와 아들이 출가하여 아라한(번뇌를 완전히 여읜 성자)이 된 이들이 있었다. 이 모자는 부처님을 의지하여 아라한이 된 것인데,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서는 지금도 아라한을 이룬 그들의 의지처가 되시는지요?”라고 묻자 부처님께서 게송을 외우셨다.
“진정 자기야말로 자기의 의지처/ 어떻게 남을 자기의 의지처로 삼으랴?/ 자기를 잘 단련시킴으로써만/ 자기를 의지처로 만들 수 있는 것/ 이는 실로 성취하기 어렵다.”
스스로 존귀함은 얻기 어렵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졸업시험의 논술문제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학생들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