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 영하 20도 안팎의 강추위가 몰아친 상황에서 ‘서울시민의 발’ 시내버스가 역대 최장(만 이틀) 파업을 강행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시내버스는 다시 달렸지만,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파업 직후 버스 노사의 행태였다. 노조원들은 임금 인상 요구를 관철하고 정년 연장이라는 달콤한 과실도 챙겼다.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고, 최소한의 서비스 개선 약속조차 없었다. 오직 임금 인상이라는 ‘청구서’만 시민들 손에 부담으로 건네졌을 뿐이다.
세금으로 적자 메우는 기형 구조
20년 넘은 준공영제가 근본 문제
자율주행 기술로 교통 혁신할 때
반복되는 버스 파업의 원인은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철도는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파업이 벌어져도 최소 운행 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법적 안전장치가 있다. 반면 시내버스는 시민의 발이 완전히 묶여도 교통 권익을 보장할 최소한의 방어 장치도 제재할 방법도 없다. 수도 서울의 대중교통 정책의 황당한 민낯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시가 2004년 도입한 ‘수익금 공동 관리형 준(準) 공영제’에 있다. 민간 버스업체의 노선 면허를 영구적인 사유재산으로 인정하되 적자는 시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기형적 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공공이 노선을 소유하고 경쟁을 통해 운영권을 위탁하는 ‘노선 입찰제’다.
서울시의 현행 준공영제 방식은 노사 협상의 본질을 왜곡한다. 비용 전액을 서울시가 부담하니 사용자 측은 경영 효율화를 고민할 이유가 없다. 사실상 ‘노사 연합군’과 서울시의 대립 구도에서 버스 운행 수익은 사유화되고, 리스크는 공공이 떠안는 구조다. 결국 시민의 부담만 늘어나고 파업의 불씨는 상존하는 구조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도대체 세상에 자손만대 이어지는 면허가 어디에 있나”라고 일갈한 것도 이 지점을 꿰뚫은 것이다. ‘망하지 않는 사업’이라는 확신과 매년 들어오는 보조금은 사모펀드(PEF)를 불러 모았다. 버스 회사가 리스크 없이 안정적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확실한 투자처로 변질한 것이다.
준공영제 도입 초기 연간 2000억 원대였던 서울시의 재정 지원금은 2023년 8915억 원까지 치솟았다. 버스 요금 인상이라는 고육지책에도 2024년 4000억원, 지난해엔 4500억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다. 이런 현실은 현행 준공영제가 이제는 통제 불능 상태에 가까워졌음을 방증한다.
서울시는 준공영제 도입 20주년을 기점으로 ‘사후 정산제’를 ‘사전 확정제’로 바꾸는 등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영구 면허’라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해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는 기존 방식과 틀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마침 판을 새로 짤 수 있는 기술적 변곡점이 도래했다. 바로 ‘자율주행 상용화’다. 그동안 버스 산업은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큰 노동 집약적 구조였으나, 자율주행은 이를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하면 획기적인 교통 서비스 혁신이 가능하다. 이 거대한 기술적 파도는 단순히 비용을 아끼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경직된 비용 구조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손댈 수 없었던 버스 운영 체계를 뿌리부터 재설계할 강력한 도구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이 가져올 압도적인 비용 효율성은 보조금 중심의 기형적 정책 구조를 타파할 명분이 된다. 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잉여 가치는 특정 주체의 이익이 아니라 요금 인하와 이동권 확대라는 형태로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율주행은 낡은 준공영제의 껍질을 깨고 공공성을 회복하는 명실상부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최소한의 생계를 돕는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넘어 AI 기반의 풍요를 나누는 ‘보편적 고소득(UHI)’을 논하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이동권도 달라져야 한다. 시민 누구나 AI와 자율주행이 선사하는 최상의 안전과 효율 및 쾌적함을 누리는 고품격 이동 서비스가 보편적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이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버스 준공영제의 대수술에 착수해야 한다. 자율주행이라는 수술칼이 시민 손에 쥐어질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