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There’s a new sheriff in town)”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선언했다. 이제부터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미국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1년이 지난 현재. 빈말이 아니었다. 전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미국에 적응하기 위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을 이어왔던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이 적으로 돌변한 트럼프 1년
아부와 타협으로 버틴 동맹들
동맹 간 연대와 중국 접근 모색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다. 트럼프는 유럽 동맹의 적인 러시아를 두둔하면서 러-우 전쟁을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끝내라고 종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영토 포기를 압박하고, 유럽에겐 안보 홀로서기를 강요했다. 1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운 맛’에 유럽은 울며 겨자 먹기로 6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국내총생산(GDP) 5%의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군사작전까지 언급하면서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내놓으라고 위협할 때 유럽은 마침내 각성했다. 이제 미국에게서 친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프레너미(frienemy)’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아시아의 동맹도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최대 숙적인 중국 견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럽처럼 냉대와 모욕을 당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상호 관세 부과와 일방적인 대미 투자, 국방비 증액, 북핵 등 지역 안보 위협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패권국의 변덕 등. 한국과 일본은 극진한 환대와 적절한 아부로 트럼프의 ‘분노’를 피해 나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한국은 모범 동맹국(model ally)이란 ‘훈장’을 달았다.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은 미국의 변심에 지친 지도자 사이의 필연적인 연대였다.
유럽의 나토 동맹, 아시아의 동맹, 여기에 북미의 캐나다까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란 거대 시장과 미국이 제공해온 최첨단 안보 시스템에 의존해온 동맹들은 지난 1년 동안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아직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트럼프의 남은 임기 3년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강제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도 조금씩 싹 트고 있다. 아직은 동병상련 연대 수준이지만, 미국의 동맹들은 한·일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을 찾은 이 대통령은 일본이 주도해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의사를 밝혔다. CPTPP는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기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뒤 호주, 캐나다, 일본 등 남은 회원국이 결성했고, 2024년 영국이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12개로 늘어났다. 현재 세계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경제권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란 민감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요즘 베이징은 문전성시다.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이후 올 1월에만 한국, 아일랜드, 캐나다, 핀란드 정상이 중국을 찾았고, 키어스타머 영국 총리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방중이 예정돼 있다. 당장 미국의 동맹들이 중국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의 동맹 냉대와 모욕이 중국을 돕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과 그 동맹들의 분열을 즐기고 있다. 미국의 동맹 지도자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환대했다.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전략적 선택을 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라는 모욕을 당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2018년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체포 이후 이어진 중국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상호 관세 100%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과연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2기 들어 ‘아부의 화신’이란 불명예를 안은 네덜란드 총리 출신의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그는 최근 유럽의회에서 “누군가 여기서 유럽 전체가 미국 없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그런 꿈을 꾸라”고 말했다. 지금 유럽판 나토는 불가능하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그러나 역사는 꿈꾸는 자가 만들었다. 점점 프레너미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미국이 그런 꿈을 꾸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