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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자사주’ 36조원…재계 “강제 소각땐 유동성 압박”

중앙일보

2026.02.02 03:57 2026.02.0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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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국내 기업들의 유동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보유하게 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 대상에 포함될 경우 자본금 감소에 따른 채권자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 2417곳 가운데 38.6%인 933곳이 소각 시 자본금 감소를 수반하는 자사주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일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열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취득한 자사주뿐 아니라 합병·분할 등 경영상 필요에 따라 보유하게 된 자사주까지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채 열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코스피 시장에서 33조3907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3조1882억원 등 총 36조원 규모의 비자발적 자사주가 소각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2025년 4월 1일 기준 주권상장법인의 최근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산출한 수치다.

비자발적 자사주는 기업이 주주환원 목적이 아니라 M&A, 분할, 지주사 전환 등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자사주로, 자본금에 포함된다. 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자본금이 줄어드는 ‘감자(減資)’에 해당돼 채권자 보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들은 조기 상환이나 대출 조건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기업별로는 SK가 3조6813억원어치의 비자발적 자사주를 보유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HD현대(1조9823억원), 셀트리온(1조748억원), 롯데지주(9030억원), 한화(5103억원) 등도 비자발적 자사주 보유 규모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전체 자사주 약 28억 주 가운데 비자발적 자사주는 6억 주로, 전체의 22.86%를 차지한다. 재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괄 소각할 경우 ‘밸류업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합병이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면 자본금 감소에 따른 채권자 이의 제기가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 취지와 달리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석유화학 등 산업 구조 개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부담은 M&A를 통한 사업 재편 속도를 늦추고, 격변기에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금 감소와 채권자 이의 제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회사채·대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제단체들은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최근 정부와 국회에 자사주 성격에 따라 소각 여부를 구분하는 등 합리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박영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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