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시간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좋은 도구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중간 정도거나 혹은 다양하게 변하는 여러 음악은 현실의 시간을 벗어나 우리의 호흡을 가다듬게 해주기 때문이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힘을 준다면 느린 템포의 음악은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중간 템포인 춤곡은 빠름과 느림을 오가며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템포는 너무 ‘빠름 일변도’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여백이 너무 없다. 조금이라도 여백이 생기면 빈둥거린다고 비난을 받기 일쑤고, 스스로도 가만히 있는 것을 불안해한다. 유튜브와 스마트폰 또한 남는 시간을 모두 채워 버린다. 슬픈 것은 누군가가 다른 이의 삶에서 여백을 빼앗는 구조가 알게 모르게 일상화되어 있다는 점인데, 모두가 바쁘니 금방 잊고 만다. 그러나 그렇게 ‘빠르게’만 살면 제 숨을 스스로 고르고, 여유를 찾는 법을 모르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사람이 시간에 맞춰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을 내 숨에 맞게 늘리고 줄이고, 빨리 혹은 천천히 경험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연주하는 라모의 ‘론도풍의 위제트’를 듣는다. 우아한 춤곡이다. 느리지만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움직인다. 언제든지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여유로움에서 기품과 생기가 흘러나온다. 이 짤막한 한 곡만으로도 우리는 빠름에서 벗어난다. 숨을 조금 편히 쉴 수 있다.
이 음악이 부디 여유 있는 자의 전유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끼니 때울 시간도 없이 뛰어야 하는 이들에게도 음악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 몫의 시간을 떼어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한데, 실은 그것이 음악의 본질적인 정신이다. 홀로 가지 않고 맞추어 함께 가려는 것. 우리 사회는 충분히 음악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