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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옷가게 사장의 ‘3분 영상’…영화제 휩쓴 AI계 봉준호 됐다

중앙일보

2026.02.05 12:00 2026.02.0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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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더중플 - AI 新 직업의 세계
인공지능(AI)으로 어떻게 먹고살까. AI는 현실입니다. 대기업과 기술자, 아는 사람만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시민과 일상의 노동에까지 깊이 스며들었죠. 매일 수백 건 쏟아지는 AI 뉴스에 덜컥 겁부터 납니다. 뭐부터 알고, 어떻게 내 업(業)과 연결 지을지 말이죠.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 ‘AI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AI 기술을 도구 삼아 어떻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는지 그들의 삶과 경험을 들여다봤습니다. AI 시대, 보통사람의 생존기입니다. 돈·직업·사람이 있는 현장, 함께 떠나시죠.


진부한 말이지만 꿈만 같은 일은 벌어진다. 불과 6개월 만에 삶이 이렇게도 꼬이고, 풀릴 수 있다.

지난해 8월은 허준호(45)씨에게 폭염만큼이나 가혹했다. 패션을 전공하고 그것으로 20여 년 가까이 밥벌이를 했다. 한때는 온라인 패션몰뿐 아니라 서울 연남동, 홍대, 북촌 등에 오프라인 매장까지 운영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찾는 명소로 알려지며 연 매출 10억원을 달성하던 때도 있었다. 허씨의 ‘화양연화’다.

그러나 코로나19 직격탄, 시대 변화에 따른 사업 부침 속에 이제는 매장 월세 500만원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끝내 지난해 2월 운영하던 사업체를 모두 접었다.

40대 중반 허씨에겐 인생의 변곡점이 필요했다. 나라 밖에서 혹여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 미국 투자이민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사용할 자금은 미국에 묶였고, 그걸 회수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허씨는 당장 한국에서 고정적으로 밥벌이할 게 없었다. 9살 아들과 아내를 지켜야 할 가장(家長)이었다. 닥치는 대로 뭐든 해야 했다. 재취업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만든 영상 콘텐트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마케팅은 패션 사업을 하면서 터득한 지혜다. 자신의 창작 욕구와 잘 어우러진다면 먹고살 만한 방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세상은 AI 이야기로 뒤덮였다. 국가가 AI 투자를 최우선 국가 정책으로 삼겠다고 발표한 때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온통 AI로 시끌벅적해도 남 얘기 같았던 허씨였다. 그런데 그는 AI 덕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3분 남짓한 다큐멘터리 영화 ‘핵교 맹글라(Haekgyo Manggla: Make Us a School)’로 국제 대회에서 상을 받고, 에미상 후보에 오른 감독과 협업해 작품도 만들었다.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AI 콘텐트 크리에이터(창작자)로 강연도 바쁘게 다니고 있다. 영상이라고는 단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는 허씨가 불과 6개월도 안 돼 이룬 결과물이다. ‘전화위복’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I가 많은 업(業)을 앗아간다는 이때, 허씨는 어떻게 AI로 밥벌이를 하게 된 걸까.

AI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DNA를 찾기 위해 그를 지난달 7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동일한 환경이 주어져도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판으로 바꾸는 건 ‘한 끗’ 차이다. 막다른 길에서 그가 찾은 AI 시대 생존법, 허 감독만의 AI 영상 제작 도전기를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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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옷가게 사장의 ‘3분 영상’…영화제 휩쓴 AI계 봉준호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0919


AI 新 직업의 세계_ 또 다른 이야기
챗GPT에 “나 회사 잘려?”…그가 월 300만원 부업 찾은 비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2619

2024년 7월, 건설경기 침체가 꽤 오래도록 이어질 거라는 암울한 분석이 잇따랐다. 당시 국내 한 건설 대기업에 13년째 재직 중이던 윤춘원(40)씨에게 이런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 이대로 짐 싸야 하나? "
" 내 자리가 사라지는 걸까? "

회사 태스크포스(TF) 파견을 다녀오니 자신의 자리는 위태로워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 부서로 옮겨지면서 그야말로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는 ‘깍두기’ 신세가 됐다.

윤춘원씨와 그의 아들. 사진 본인제공

갓 돌이 지난 아들, 남아 있는 대출…. 앞으로 족히 20년 가까이 더 ‘버텨야’ 하는데 자존감은 바닥 났다. 지금 이대로 경쟁력이 있는지 본질적인 물음이 생겼다. 두려웠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을 아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동료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었다. 불혹의 가장은 챗GPT를 대나무 숲 삼아 하소연했다.

그랬던 윤씨가 요즘 회사 생활이 재미있다고 한다. ‘깍두기’에서 회사 AX(AI 전환) 핵심 인력이 됐고, 월 300만원 부가 수입까지 창출하고 있다. “한평생 이룬 성장보다 지난 한 해 (AI로) 이룬 성장이 더 큰 것 같다”는 말도 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일터가 어떻게 다음을 내다볼 수 있는 성장의 공간이 됐을까. 1년 남짓한 시간, 윤씨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달 14일 인천시 연수구에서 그를 만났다.

윤춘원씨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 사우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본인제공


김민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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