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 동부시간 기준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호르무즈해협을 중심으로 한 대(對)이란 해상 봉쇄에 돌입했다.
세계 원유·가스 물동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한 봉쇄 조치로, 지난 11∼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란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에서 주말을 보낸 뒤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길에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봉쇄 조치에 들어간 직후 이란이 미군의 해당 작전을 방해할 경우 응징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3일 오전 10시 23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 해군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고, 158척이 완전히 초토화됐다”며 “우리가 아직 공격하지 않은 것은 이른바 ‘고속 공격정’몇 척뿐인데, 이를 큰 위협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선박들이 미군 봉쇄선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면 마약 밀매선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즉시 제거하겠다”며 “해상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던 마약의 98.2%가 중단됐다”고 경고했다. 158척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도 주장한 수치다.
미군은 봉쇄 돌입에 앞서 미국의 허가 없이 해협에 진입하는 모든 선박을 차단·회항·나포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중부사령부는 선원들에게 공지를 보내 이 같은 방침을 전달했다.
공지에 따르면 미군의 봉쇄 조치는 오만만과 호르무즈해협 동쪽으로 아라비아해에서 봉쇄 조치를 시행하며 이는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선박의 통항에 적용된다. 공지엔 “승인 없이 봉쇄 구역에 진입하거나 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차단(interception), 회항(diversion), 나포(capture)의 대상이 된다”고 명시됐고, “봉쇄는 항구와 원유 터미널에 국한하지 않고 이란 해안선 전체를 포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식량·의약품·기타 필수품 등 인도주의 물자에 대해선 검사를 거쳐 반입을 허용”하기로 했고, “이란 이외의 목적지로 향하거나 그곳에서 출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는 중립적 통항 경로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과 무관한 선박의 통행에 대해선 원칙적인 자유 항행을 보장하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이란의 자금줄인 원유 판매를 차단하고, 이란으로 유입되는 사실상의 모든 물자 공급을 막기 위한 조치다. 지난 7일 이뤄진 2주간의 휴전 합의 이후에도 사실상 해협에 대한 봉쇄를 이어온 이란에 맞선 역(逆) 봉쇄로 이란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란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 2월 25일 아랍에미리트 북부 호르무즈 해협의 후자이라 연안에서 한 화물선이 운항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군의 봉쇄 조치에 대해 이란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란군을 통합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국제 수역에서 선박의 해상 교통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불법적인 행위이자 명백한 해적질”이라며 비난했다. 이어 “페르시아만과 오만해에 인접한 항구의 안보는 모두를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라며 “페르시아만과 오만해 수역에서 이란의 항구 안보가 위협받는다면 역내 그 어떤 항구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지시간 13일 이란 테헤란의 한 신문 가판대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군 함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삽화가 그려진 신문이 판매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측은 특히 “이란이 영해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란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며 “전담 부대를 통한 이란 영해 내 안보 확보는 앞으로도 결연히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협상단 대표였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도 전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싸운다면, 우리도 싸울 것”이라고 했다. 만약 미군이 군함을 동원해 봉쇄 작전을 본격화할 경우 호르무즈해협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발생할 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해협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레바논에 대한 공세를 지속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해상 봉쇄 조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 4일 미 공군 소속 KC-135 스트라토탱커 항공기가 F-35A 라이트닝 II 전투기에 공중 급유를 실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이란이 파키스탄 평화 회담의 규칙을 위반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해상 봉쇄를 결정했다”며 “이런 단호한 입장을 지지하며 미국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은 이란이 협상 진입 조건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며 “원래 합의는 즉각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었으나 이란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미국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결렬된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지상전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날 일제히 ″이스라엘군이 이란과의 전쟁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협상단을 이끌었던 JD밴스 미국 부통령에게 협상 상황을 직접 설명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보유 중인 모든 농축 우라늄 제거와 향후 수십 년간 이란 내에서 어떠한 추가 농축도 이뤄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이는 이스라엘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