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총선 중간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 한 남성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여당이 큰 표 차로 패배했다.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던 오르반이 경제 악화, 사법부 장악 등으로 역풍을 맞아 16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며 헝가리는 물론 유럽 극우·포퓰리즘 진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헝가리 국가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총선 개표율 98% 기준 머저르 페테르(45)가 이끄는 야당 티서당이 53.6%를 득표해 199석 중 138석을 확보했다. 오르반이 이끄는 여당 피데스당은 37.8% 득표로 55석에 그쳤다. 투표율 79.5%는 1989년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최고 수준이다. 머저르 대표는 이날 부다페스트 연설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오늘 밤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또 대통령, 사법부·검찰 수장 등 친정부 핵심 인사들의 사임을 촉구하며 “나라를 훔친 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총선 승리를 선언하는 머저르 페테르 티서당 대표(가운데). [AP=연합뉴스]
오르반이 패배한 이유로는 우선 경제 상황 악화가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 헝가리는 2022년 14.5%, 2023년 17.6%로 2년 연속 유럽연합(EU) 최고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사법부·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오르반 정부는 2010년 집권 이후 개헌과 30차례 이상의 선거법 개정을 통해 권력 구조를 재편했다. 결선투표를 폐지하는 등 다수당에 유리한 선거 구조를 구축해 “여당에 유리한 제도 설계”(애틀랜틱카운슬)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왔다. 판사 조기퇴직 추진 등으로 사법부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1년엔 헌법을 바꿔 정부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게 했으며, 11명이던 헌법재판관을 15명으로 늘리면서 늘어난 4명에 대해선 여당 단독 임명이 가능하도록 해 헌재를 장악했다.
그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비상사태라며 의회를 무력화하는 행정명령 통치를 남발해 독재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론의 자유도 심각하게 위축됐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헝가리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한 16년의 권위주의 통치가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AP통신)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트럼프(왼쪽), 오르반. [AP=연합뉴스]
오르반의 친러 행보도 논란거리였다.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지원안, 러시아 추가 제재,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사안이 번번이 헝가리의 반대로 좌절됐다. 러시아와 밀착하는 동시에 유럽과의 갈등 속에서 우군을 필요로 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밀착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오르반을 지지했고, 선거 직전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헝가리를 직접 방문해 응원했지만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오르반의 패배는 헝가리를 넘어 유럽 정치 전반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U 내부 결속이 강화되고 동유럽 내 친러 세력이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오르반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온 유럽 내 극우 포퓰리즘 진영이 구심점을 잃고 위축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포린트화(헝가리 통화)가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것도 이런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머저르 대표는 EU와의 관계 정상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핵심 동맹 강화를 천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자금 동결 해제와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헝가리가 다시 유럽 주류로 복귀할 계기”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