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네 남매와 아버지의 빈소에 영정이 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의 수감 이후 아버지와 네 자녀가 숨진 ‘울산 일가족 사망’ 사건 당시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교정시설 간 자녀의 위기 상황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수용자 자녀 등 위기 가정의 복지 사각지대를 밝히기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2년째 표류하고 있다.
13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울산 사망 가정의 어머니 김모(35)씨가 범죄에 연루돼 지난해 11월 구속된 이후 아버지와 5개월 된 자녀 등 남은 이들은 생활고를 겪었지만 경찰과 지자체에선 위기 신호를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 1월 “아이가 예비소집에 오지 않고, 보호자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초등학교 담임 교사의 112 신고를 접수해 주거지를 방문했지만, 아동 학대 정황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직윈들이 움직이는 모습. 뉴스1
지자체는 경찰 방문으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 2월이 돼서야 위기 징후를 파악했다. 해당 가정은 지난해 3월 이미 지자체 관리 대상 가구로 선정돼 긴급 생계비 등 지원을 받았지만, 그해 12월 지원 기간이 끝났다. 울산 울주군은 지원 종료에 앞서 생계를 책임지던 김씨가 구속됐단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울주군청 관계자는 “구속 사실은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교정시설에서도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다”며 “지자체에선 공과금 체납이나 이웃 신고 등을 위기 징후를 토대로 추후에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수사 진행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근거가 없단 입장이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경찰청 ‘피의자 체포 시 자녀 배려 등 유의사항’에 따르면 경찰은 2019년 일선 수사기관에 “피의자 체포로 자녀 등이 홀로 남겨지는 경우 적절한 안전 확보 수단을 강구”하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수사 현장에선 이것 만으론 부족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상황마다 수사기관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한 근거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다”며 “미성년 자녀가 있는 피의자는 가급적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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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수사 단계서부터 아동 보호해야”
전문가들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의자 자녀 보호에 소홀하면 이후 절차에서도 복지 사각지대가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더채움교육복지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는 최경옥 박사는 “부모가 수사 기관에서 체포되는 순간부터 이후 법원 재판, 교정시설 수용 등 각 단계에서 부모와 분리된 아동은 심각한 상실감에 빠지고 경제적·정서적 위험에 노출된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체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수사 기관은 물론 피의자를 검거하는 게 일차적 목표지만, 아동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건 국가의 의무인 만큼 아동 보호에도 더 힘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자녀가 보호대상 아동에 해당하는지 확인한 뒤 지자체에 알리게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2024년 8월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치료감호시설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치료감호법 개정안 역시 같은 해 8월 발의된 이후 법사위에서 1년 8개월째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교정시설의 장이 신입 수용자 자녀의 양육환경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지자체에 알리도록 한 형집행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지만, 경과규정(1년)으로 인해 시행은 올해 12월로 미뤄졌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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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회복지 공무원 판단 존중해야”
이 때문에 지자체의 복지 서비스 지원 체계라도 신속하게 개선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울산 사건 당시 울주군에선 해당 가정을 3차례 찾아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안내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신청하지 않았다. 월 소득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었지만, 차량 등 보유 자산으로 인해 수급 대상 기준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공무원에게 직권 신청 권한을 주더라도 획일적인 수급 기준에 막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위기 가구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현장의 사회복지 공무원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도록 수급 기준을 지자체별로 유연하게 적용하되, 부정 수급이나 민원 해결 창구로 쓰이는 문제를 막기 위해 전문 위원회 등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