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개관》 작품과 도시 풍경 동시에 감상 11만sqft 규모 통합 전시 공간 “호기심이 나침반 되도록 하라”
1.전시장은 2500~3000점의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어우어지며 80여 개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2. 360도 유리로 둘러진 '벽없는 미술관'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려지며 작품과 도시 풍경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는 철학을 구현했다. 김상진 기자
15일 오전 9시, LA의 중심을 지나는 윌셔 불러바드 위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새 심장부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가 오는 19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미디어에 공개됐다.
행사장에는 문화계 인사와 언론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20년 가까이 이어진 LACMA 캠퍼스 재편 프로젝트의 완성을 지켜봤다.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의 윌로우 베이 이사회 의장은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공공 인프라”라며 “예술을 도시 한가운데로 끌어올린 상징적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기존 LACMA는 전시관이 여러 동으로 분산돼 있었다. 브로드 현대미술관과 레즈닉 파빌리온 확장에도 예술 작품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완성된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는 아만손·해머 빌딩 등 노후화된 전시동을 철거한 자리에 약 11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통합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한 건축물이다.
이번 개관으로 LACMA의 전체 전시면적은 약 22만 스퀘어피트로 확대됐다. 분산형 구조에서 메인 갤러리 중심 체계로의 전환이다.
건물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줌토르(83)가 설계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2009년)을 수상한 인물이다. 길이 약 900피트 규모로 윌셔 불러바드를 가로지르며 360도 유리로 둘러진 ‘벽 없는 미술관’은 그의 손끝에서 구현됐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려지며 작품과 도시 풍경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는 철학을 녹였다.
갤러리로 들어서면 관람객에게 명확한 동선은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걷고 멈추고 돌아보며 공간을 경험하도록 설계됐다.
갤러리를 설계한 건축가 페터 줌토르(오른쪽)와 마이클 고반 LACMA 최고경영자.
마이클 고반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에는 정면과 후면이 없고 모든 방향이 입구”라며 “정해진 관람 동선도 없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 방향 표식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오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다. 작품은 시대·지역·매체 구분 없이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됐다. 약 2500~3000점의 작품을 45명의 큐레이터가 협업해 80여 개 전시로 구성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등 회화 옆에 다른 문화권 작품이 놓이고, 몇 걸음 이동하면 전혀 다른 시대의 작품이 이어진다. 전통적인 전시의 순서와 구분이 사라진 가운데 현대 작가의 신작이 더해진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다.
전시관은 1번부터 78번까지 번호로 구분되지만 순서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초반 구역(1~15번대)은 고대 문명과 종교, 초기 회화 중심으로 아시아·유럽·중동 작품이 혼합 배치돼 있다. 중앙 구역(15~35번대)은 문화 교류와 이동, 글로벌 연결을 주제로 구성된 핵심 공간이다.
중후반 구역(35~55번대)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전환 구간으로 설치·영상 등 실험적 작품이 늘어난다. 후반 구역(55~78번대)은 현대 작가 중심으로 정체성, 이민, 도시, 기술 등의 주제가 두드러진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한 구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동·자연·신체·기억 등 각 주제 속에 흩어져 전시돼있다.
김수자의 영상 설치 작품 ‘니들 우먼’은 세계 여러 도시의 군중 속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 이동과 정체성을 다루고, 서도호의 신작 ‘경복궁 자경전’ 설치 작품은 반투명한 섬유 구조로 건축 공간을 재현했다.
한영수의 ‘명동, 1958’ 등은 전후 서울의 일상을 기록하며, ‘한국 도자기 파편’ 전시는 불완전함 속 전통 미학을 조명한다.
현대 회화에서는 이우환, 박서보, 이건용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와 박서보의 ‘에크리튀르(묘법)’는 각각 신체 행위와 반복을 통해 단색화의 특징을 보여주며, 안영일의 ‘워터’와 이우환의 드로잉 역시 절제된 표현으로 자연과 존재를 탐구한다.
미술관 전시는 외부 공간까지 확장된다. 갤러리와 연결된 약 3.5에이커 야외 공간에서는 작품과 일상이 어우러지며, 벤치 옆으로 제프 쿤스의 ‘스플릿 로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정원’ 등 대형 조형물이 배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