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인의 경험은 메아리로 가득 차 있어요. 어딜 가든 통역사를 거쳐야 대화를 할 수 있죠. 메아리 자체가 제 삶이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사운드아티스트 김 크리스틴 선(46)이 미국 수어(ASL·American Sign Language)로 말했다. 수어 통역사나 자막을 통해서만 정보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청각장애인의 경험을 ‘메아리’라고 토로했다. ASL 통역사가 그의 말을 영어로 반복했고, 다시 한국어 통역을 거쳐 기자에게 전달됐다.
올 여름 전시 준비를 위해 방한한 김 크리스틴 선을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만났다. 한국 미디어로는 첫 인터뷰다.
‘여행할 때 청각 장애인의 분노 정도’(2018). [사진 양하오]
음표와 악상 기호, ASL을 활용한 목탄 드로잉 ‘청각 장애인의 분노(Deaf Rage)’ 시리즈(2018)가 대표작이다. 재치있고 아름다운 한편, 사회에서 쉽게 간과되곤 하는 배제와 차별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는 지난해 2~7월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연말엔 영국의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 선정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사’ 34위에 올랐다. 한국계 미술인으로 가장 높은 순위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MMCA × LG OLED 시리즈’에 선정돼 오는 7월 대규모 설치 작품을 내놓는다. 9월에는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한다. 이제 그는 스스로 메아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열린 아트 바젤 홍콩의 대형 설치 특별전인 ‘인카운터스’ 섹션에선 ‘일련의 메아리 덫(A String of Echo Traps)’을 전시했다. 홍콩의 한 쇼핑몰에 검은 정육면체를 설치, 상자 속에 갇힌 메아리를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작품을 설명하면서 그는 왼손을 펼치고 거기에 오른손을 부딪쳐 튕겨 나가게 해 보였다. ‘메아리’의 미국 수어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스템이 공고해 좀처럼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크리스틴 선은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979년 미국에 이민 간 부모의 둘째 딸이다. 농인인 두 딸을 위해 청인 부모는 수어를 배웠다.
그는 로체스터 공대 졸업 후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전업 작가로 사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환점은 2008년 베를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다. 도시 곳곳에서 사운드 아트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소리는 듣는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에 두려웠지만, 스스로 소리에 대한 권한을 되찾아오기로 결심했다.
그의 삶은 독일 예술가 토마스 마더와 결혼해 베를린에서 두 살, 여덟 살 두 딸을 키우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족 중 유일한 청각장애인인 그가 큰딸이 한 살 때 만든 ‘루를 위한 일주일치 자장가’(2018)는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인터뷰를 앞두고 그는 석 장짜리 ‘접근성 가이드’를 보내왔다. ASL에 대한 설명과 함께 “‘농인 작가 김 크리스틴 선’ ‘청각 손상자(hearing-impaired)’ 같은 표현은 지양해 달라”는 요구를 상세히 적었다.
“5년쯤 전 베를린의 어느 큰 미술관 큐레이터가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45분 내내 농인의 삶에 대해서만 물었어요. 작품 얘기는 15분밖에 못했죠.”
가이드를 만든 배경이다. 그는 기사에 ‘청각 장애인’이 너무 부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