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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내가 대통령 해야겠어!”…MB는 현대 떠날 결심했다

중앙일보

2026.04.20 13:00 2026.04.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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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회고록

제1회 기로에 서다


1991년 11월의 어느 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나를 호출했다.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직을 비롯해 숱한 현대그룹 계열사의 요직을 맡고 있던 때였다. 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이 회장,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어떻게든 핍박을 견디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1300억원이 뭐야, 1300억원이! "

현대그룹 재직시절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과 중요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

현대그룹 재직시절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과 중요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

그는 그 직전 세무당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거쳐 현대그룹과 정 회장 일가에 부과한 1361억원의 추징세액을 언급했다. 당시 현대와 노태우 정권의 악연은 뿌리 깊었다. 노태우 정권은 출범 이후 강력한 재벌 규제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현대를 문어발식 확장의 핵심그룹으로 지적하면서 규제의 타깃으로 삼았다.

정 회장도 참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반발해 비판을 쏟아냈다. 자연스레 정권과 정 회장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했다. 그 결과가 그 세금 부과였다.

정 회장은 한참을 격노하며 세무당국, 그리고 배후에 있던 정권의 만행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나를 기습했다.

" 세금 내지 말고 차라리 그 돈 갖고 내가 정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

깜짝 놀랐다. 나는 완곡하게 그를 말렸다.

" 회장님. 노태우 정권이 너무 심한 것도 맞고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나신 것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정치를 하는 게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주십시오. "

정 회장은 “생각 좀 더 해보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러더니 그해 11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금 낼 돈이 없다”며 과세 불복 선언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1년 11월 18일 서울 계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61억원의 국세청 추징금을 낼 수 없다"며 과세 불복 선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1년 11월 18일 서울 계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61억원의 국세청 추징금을 낼 수 없다"며 과세 불복 선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건 그대로 정권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그 순간 시중에 나돌던 정주영의 정치 입문설 또한 빠르게 확산했다. 가족과 임원들이 말렸지만 돌아온 건 불호령뿐이었다.

" 내가 만든 회사인데 망해도 내가 망하는 거지! 뭐, 어때서 그래! "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정 회장은 과세 불복 선언 이틀 만에 그걸 번복했다. 그 직후 새벽 출근길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정계에 진출하지는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 입문 의지가 다소 약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정 회장이 또 다시 나를 불렀다. 그리고 폭탄선언을 했다.

"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그러면 말이야, 당신은 국무총리가 되는 거야. "

정 회장은 경악한 나를 보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 나하고 당신이 손잡고 힘을 합쳐서 현대그룹을 이렇게 잘 이끌고 있잖아. 마찬가지야. 내가 대통령으로 큰 틀에서 이끌고, 당신이 총리로 실질적인 일을 처리해나가면 현대그룹처럼 국가도 잘 운영할 수 있을 거야. "

아무래도 반대가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완곡하게 반대한 걸 두고 내 생각을 오해한 듯했다.

" 회장님! 총리가 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 뜻은 재벌 총수인 정주영 회장님께서 정치를 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

나는 말을 이어갔다.

" 회장님께서 대통령이 되시면 누구보다도 훨씬 더 잘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정경(政經) 유착이니 뭐니 말이 많은데 재벌 총수가 정치를 한다면 아예 정경이 같아지는 거 아닙니까. 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같은 더 젊은 기업인들도 ‘나도 대통령 해야겠다’며 앞다퉈 정치에 뛰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

정 회장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내친 김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이 코엑스 전시장에서 현대차의 포니 승용차와 현대중공업의 대형 선박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이 코엑스 전시장에서 현대차의 포니 승용차와 현대중공업의 대형 선박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게 다 회장님께서 토대를 만드신 것 아닙니까. 저는 이걸 더 키워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는 게 정치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치는 유한합니다. 회장님께서 대통령이 되신다 해도 겨우 5년 밖에 못 합니다. 하지만 경제에 공헌하는 건 평생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회장님의 숙원인 남북 교류 확대도 정치인으로서보다는, 경제인으로서 훨씬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

나는 열변을 토했지만 정 회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이미 정 회장은 은밀하게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지난 20년 이상 최측근이자 조력자, 조언자였던 나였다.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의 직설적인 반대 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며 나에게 재차 말미를 준 이유였다.

그 뒤에도 나와 몇 차례나 줄다리기를 반복한 정 회장은 1991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연말까지 결정하라”고 최후통첩했다.

진퇴양난이었다. 정 회장의 정계 진출에 찬성할 수도, 그를 따라 신당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정 회장의 뜻에 반대해놓고 현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말이 안 됐다.

‘떠날 때가 된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980년대 말부터 이미 현대그룹을 떠나는 시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월급쟁이로서 정점에 섰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2세들이 충분히 성장한 만큼 내가 없어도 현대는 잘 운영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운신(運身)을 생각했다.

게다가 그 무렵 정 회장과 나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1990년 초 뜻밖의 손님들이 나를 찾아오면서 촉발된 한 사건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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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통령 될거야, 당신은...” MB 경악한 정주영 폭탄 발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7558

"왜 내가 주인공 아니야!" 정주영·MB 갈라놓은 '결정적 사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8505


서승욱.박진석.김상진.김기정.왕준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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