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앞 두 글자 ‘운칠’은 ‘성공에서 운이 70%를 차지한다’란 뜻이다. 뒤 두 글자 ‘기삼’은 ‘성공에서 기량이 30%를 차지한다’란 뜻이다. 두 부분이 합쳐져, ‘승부 또는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력이나 기량의 두 배를 초과할 정도로 중요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청나라 초기 활동한 소설가 겸 저술가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의 단편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유래했다. 요재는 서재 이름이다. 그가 이 서재에서 기이한 이야기들을 집필했다는 의미가 담긴 제목이다.
포송령은 여러 차례 과거 시험에 불합격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응시한다. 21살에 결혼한 후, 명문가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오래 했다. 잠시 지방관의 참모로 일한 적도 있다. 71세에 그는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생원(生員)이 됐다. 생원이 되고 말년에 생활이 조금 윤택해지자 창작 활동에 집중했다. ‘요재지이’, ‘일용속자(日用俗字)’, ‘혼가전서(婚嫁全書)’ 등 저서를 남겼다. 영화 ‘천녀유혼(倩女幽魂)’의 원작 이야기도 ‘요재지이’에 나온다. 향년 75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운칠기삼’이 유래한 이야기의 플롯은 복잡하지 않다. 한 서생이 과거 시험에 계속 불합격하고 인생에서 여러 시련을 겪는다. 어느 날 아내마저 집을 나가버린다. 그는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정한다. 대들보에 줄을 매다는 순간, 갑자기 너무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는, 작가 포송령의 쓰라린 경험들도 일부 담겨있고 무난한 전개로 볼 수 있다. 이어 서생은 옥황상제에게 찾아가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정말로 옥황상제를 찾아간다. 이 장면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이한 이야기다. “왜 저보다 실력이 부족한 이들은 과거에 합격하고, 저는 매번 떨어지는 것입니까?” 그가 옥황상제에게 따졌다. 설명도 쉽지 않거니와, 또 다른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난감해진 옥황상제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호출하고, 술 마시기 대결을 시킨다. 두 신 가운데 누가 이기든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약속도 서생에게서 미리 받는다.
결과는 운명의 신이 승리하는 쪽으로 나왔다. 운명의 신은 7잔을 마셨고, 정의의 신은 3잔밖에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생은 더욱 낙담한다. 다행히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약 30% 정의는 늘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 정도라도 대단한 것 아니냐? 이런 옥황상제의 해석에 순진한 서생이 설득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포송령이 집필하던 시대의 독자라면 이런 결론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겠다. 당시 현실 세계에 이보다 더 불합리한 일들이 가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에 우문(愚問)으로 현답(賢答)을 찾은 경우는 드물다. 서생은 자신의 과거 시험 성적표와 최종 합격자 명단 사이의 불일치를 불공정의 예로 제시하며,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왜 계속되는지에 대해 옥황상제에게 묻는다. 차가운 조언자라면, 책임자를 찾아가 의문을 풀거나 황제에게 상소문이라도 올리라고 권고했을 법한 딱한 질문이다.
만약 요즘 독자라면, 여러가지 아쉬움을 더 느낄 것 같다. 옥황상제는 왜 굳이 두 신만 선택해 대결하게 했을까? 다양한 신들을 대결에 참여시키는 기획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이야기 속에서 운명의 신으로 대표되는 운(運)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포송령은 열심히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을 뺀 나머지 변수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정의의 신으로 대표되는 기(技)는 또 무엇일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진인사’에 가까운 개념으로 짐작된다.
운칠기삼. 과학이 발전한 요즘에도 여러 상황에 설득력을 갖는 묘한 네 글자다. 의사 결정 직전에도, 결과에 대한 해석에도 두루 유용하게 쓰인다. 누군가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서도 겸손한 태도로 이 말을 반복하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을 장애물이나 위태로움 가운데 3할은 이른 봄 얼음 녹듯 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