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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流水下灘非有意 白雲出岫本無心(유수하탄비유의 백운출수본무심)

중앙일보

2026.04.22 08:10 2026.04.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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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자연계(The natural world)’의 자연은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을 쓴다. ‘스스로 그러한 대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세계가 바로 자연계인 것이다. 물이 아래 여울을 향해 흐르는 것도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래 그러한 대로 흐르는 것이며, 골짜기에서 구름이 피어나는 것도 본시 스스로 그러한 대로 피어나는 것일 뿐이다. 자연은 이처럼 그저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산다.

流:흐를 류, 灘:여울 탄, 岫:골짜기 수. 물이 아래 여울로 흐르는 것도 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흰 구름이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것도 본래 무심이라오. 25x68㎝.

流:흐를 류, 灘:여울 탄, 岫:골짜기 수. 물이 아래 여울로 흐르는 것도 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흰 구름이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것도 본래 무심이라오. 25x68㎝.

유학(儒學)의 주요 덕목 중에 ‘시중(時中)’, ‘처중(處中)’이 있다. 때에 맞게 사는 게 시중이고, 장소에 맞게 사는 것이 처중이다. 인류를 제외한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은 단 한 순간도 시중과 처중을 어기는 법이 없다. 이에 반해, 인류는 온 세상을 다 갖겠다는 욕심에 빠져 자연을 정복하는 데에 혈안이 되면서부터 시중과 처중의 자연기능을 거의 다 상실했다. 억지를 쓰며 살다 보니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시중과 처중을 덕목으로 챙긴 『중용』이라는 책까지 만들어 애써 수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연 파괴는 계속하고.

인류 외의 자연계에는 남획과 남용이 없다. 인류만이 남획·남용하느라 애쓰고, 과식하고서 소화제를 먹느라 또 애쓰는 피곤한 삶을 자초하고 있다. 이제라도 물처럼 구름처럼 무심하게 살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어떤 방송의 노래경연에서 80대 노인으로 분장한 젊은 가수가 ‘봄날은 간다’를 부르기 전에 자녀들을 향해 “너무 애씀서 살지 말거라”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있었다. 미리 설정한 대본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방청석이 눈물로 흥건해졌다. 우리가 다 그렇게 뭔가 너무 애쓰며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 눈물이 났을 것이다. 너무 애쓰지 말자. 더러는 흐르는 물, 피어나는 구름처럼 ‘스스로 그러함’에 우리를 맡겨 보자.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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