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공양간에 대학생들이 무료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이규림 기자
21일 오전 11시40분,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공양간 앞. 한국외대와 경희대 학과 점퍼(과잠)를 입은 30여명의 대학생이 긴 줄을 이뤘다. 낮 12시부터 이뤄지는 연화사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서였다. 배식이 시작되자 1시간 만에 준비된 100인분이 동났다. 대길행(법명) 연화사 홍보부장은 “오늘은 시험 기간이라 사람이 적은 편”이라며 “지난주엔 160인분이 나갔는데, 식사 공간이 부족해 닫혀있던 스님 공양간까지 열어야 했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 무료 점심식사를 먹으러 온 대학생으로 공양간이 붐비는 모습. 이규림 기자
고기 한 점 없는 식사지만 사찰 공양간에 대학생이 붐비는 건 이 8첩 반상이 무료기 때문이다. 이날 연화사 점심 공양엔 김말이 튀김, 콩나물무침, 도토리묵 등 8개 반찬에 과일과 요거트까지 차려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학생들 식판은 대부분 잔반 없이 비어 있었다.
등록금에 식비 등 생활물가까지 치솟자 천원 학식, 인터넷 가성비 식당 애플리케이션(앱)에 이어 사찰 공양간 무료 배식까지 청년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22일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지난달부터 서울 내 대학 인근 사찰 세 군데에서 대학생에게 무료 점심을 주는 ‘청년밥心’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옆 연화사에선 매주 화요일 점심을 무료로 나눠준다. 재단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 중인 사찰 세 곳 모두 지난해보다 이용 인원이 1.5~2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 대학생들이 무료 점심 배식을 받는 모습. 이규림 기자
청년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경희대 재학생 이다예(21)씨는 “평소 야채를 잘 먹지 않고 무료 식사라 별 기대 없었는데, 먹어보니 맛있어서 또 올 생각”이라고 했다. 채식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됐단 반응이다. 다른 경희대 학생(22)은 개신교도지만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화요일마다 사찰을 찾는다. 그는 “학교 주변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는데 한 끼에 만 원 넘는 가격이 부담돼 매주 화요일 점심은 여기서 먹는다”며 “종교와 상관 없이 좋은 취지여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난 건 최근 등록금과 물가가 오르며 재정 부담이 커지자 청년들이 식비부터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서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4년제 대학 190곳 중 125곳이 등록금을 인상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생활물가지수는 2.3% 상승해 월간 기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특히 이 기간 쌀(15.6%)·달걀(7.8%)·돼지고기(6.3%) 등 주요 식재료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크게 뛰어 식비 부담은 더 커졌다.
15일 오전 8시 서울대 학생식당에 '천원의 학식'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이규림 기자
일부 대학에 있는 ‘천원의 아침밥’에도 매일 긴 대기 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7시55분, 서울대 학생식당엔 문을 열기도 전에 30명 넘게 ‘오픈런’ 대기 줄이 생겼다. 이날 천원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인도네시아 유학생 조세핀(22)은 “식비를 아끼려 일주일에 3번 정도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한다”며 “한국에 3년 전 처음 왔을 때는 계란 한 판에 6000원이었는데 요즘은 만원 정도라 물가가 오른 게 와 닿는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처에 따르면 3월 천원의 아침밥 일 평균 이용자 수는 2024년 761명, 2025년 792명, 2026년 802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초저가 메뉴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앱 ‘거지맵’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거지맵은 출시 1달여 만에 누적 사용자가 126만명을 넘었고, 3800여곳의 식당이 지도에 올랐다. 경희대 학생 정진욱(25)씨는 “학교 주변에서 자취 중인데 외식 물가가 부담돼서 요즘은 친구들과 거지맵에 있는 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