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박수련의 시시각각] 기술 공화주의자들의 메시아 연극

중앙일보

2026.04.23 08:16 2026.04.26 05:3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박수련 콘텐트3부국장 겸 기업연구부장

박수련 콘텐트3부국장 겸 기업연구부장

미국-이란 전쟁 초기에 미 백악관 및 국방부(전쟁부)와 각을 세우며 AI의 살상무기화에 제동을 걸던 앤스로픽이 요즘 ‘AI 공포 산업’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지난 2월 공개한 AI 모델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를 주저앉히더니, 얼마 전엔 창업자 다리오 아모데이가 폭스뉴스에 출연해 “앞으로 5년 이내에 모든 기술 직업의 50%, 초급 변호사, 컨설턴트, 금융 전문가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달 초엔 최신 범용 AI ‘미토스(Mythos)’가 너무 위험해 일반에 전면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미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 등 약 40개 조직엔 프리뷰 버전을 제공했다.

이후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 산하 조직인 국가안보국(NSA)은 이미 미토스 프리뷰를 사용 중이라고 한다. 한 달 전 앤스로픽을 중국 기업들에나 하던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하더니 그건 약속대련이었나.

앤스로픽 등의 ‘AI 공포’ 산업화
팔란티어의 기술 공화주의 진격
한국 정치, 감당할 수 있을까
앤트로픽의 초강력 AI 신모델 ‘미토스’ 이미지.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뇌 이미지를 결합해 AI를 형상화한 그래픽 이미지. 셔터스톡

앤트로픽의 초강력 AI 신모델 ‘미토스’ 이미지.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뇌 이미지를 결합해 AI를 형상화한 그래픽 이미지. 셔터스톡


챗GPT 공개 이후 오픈AI가 그랬듯, 앤스로픽도 공포 레토릭으로 AI 산업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중이다. 먼저 AI를 핵무기에 비견하거나 AI가 인간 일자리를 위협할 거라며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고, 이 AI는 너무 위험해 공개할 수 없다며 접근 권한을 통제한다. 이후 AI를 이렇게 규제하자며 ‘룰 세터’ 자리를 차지하는 식이다.

이들의 주장에 진실이 있다 해도 실체는 공포 마케팅을 섞은 정치 행위에 가깝다. AI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개발한 AI가 인류의 필수적이고 유일한 방어 도구라고 주장한다. AI를 국가 안보자산으로 격상시키고 국가적 혹은 전 지구적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 AI 시대의 메시아(구세주) 지위를 노리는 이들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둘 다 연내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경쟁 중이다. AI 기업의 IPO 흥행 요소로 전쟁·실업만큼 강력한 게 또 있을까.

한국은 반도체, 인터넷, AI 등 서방 자유진영이 주도한 기술혁신 속에서 성장해 왔기에 이들의 행보를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는 경제적 이유를 넘어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이들을 더 주목해야 한다는 데 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미군에 ‘국방 AI’ 체계를 제공한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를 보면 한국이 언젠가 감당해야 할 고민이 그려진다. 지난 18일 팔란티어는 X(옛 트위터) 계정에 창업자(앨릭스 카프)의 저서 『기술공화국』의 핵심을 22개 꼭지로 요약해 올렸다. 기술은 미국의 힘과 가치를 지키는 데 쓰여야 한다고 믿는 기술 애국주의, 기술 공화주의 선언문이었다.

“원자의 시대는 끝나고 AI에 기반한 억제의 시대가 시작된다” “공허하고 속 빈 강정 같은 다원주의에 저항해야 한다” “세계대전 이후 이뤄진 독일·일본에 대한 (군사적) 중성화는 철회돼야 한다. 일본이 평화주의에 대한 연극적 헌신을 계속한다면 아시아의 힘의 균형은 위협받을 것이다” “자유 민주 사회가 승리하는 데는 하드파워가 요구되며, 이 세기의 하드파워는 소프트웨어 위에 구축된다” 등 기술에 기반한 권력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미국 정부의 운영체제(OS)를 자처하는 이 기업이 노리는 시장은 자유진영 전체다.

요즘 거버넌스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미국 정부에서 이들의 역할이 커질수록 한국 등 우방은 미국 정부의 OS를 구매하도록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AI 생태계 육성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현실 정치에선 쓰임에 한계가 있겠다는 회의가 밀려온다. 이미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미토스 프리뷰 그룹에 끼워달라고 타진 중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각 사의 부스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각 사의 부스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의 AI 기술 엘리트들이 글로벌 정치 무대로 진격하는 세계에서 한국은 기술 자립과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대통령이 당선 전 기소된 사건이 조작됐다며 국정조사에 올인하는 여당, ‘워싱턴DC 화보 촬영’ 논란에 휘말린 야당 대표가 뉴스거리인 한국 정치를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AI든, AI 설계자든 그들이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될 게 정치건만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지.





박수련([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