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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도체 호황의 착시…성과급보다 미래 투자다

중앙일보

2026.04.24 08:34 2026.04.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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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명으로 ‘기사회생’ 뒤 성과급 갈등 리스크



경제안보 자산 된 반도체 볼모 삼아 파업 위협



주요국 반도체 총력전…방심하면 ‘초격차’ 상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각각 300조원과 2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적자에 시달리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반도체 수퍼사이클로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호황의 이면에서 종업원들의 무차별적 성과급 요구가 새로운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지급하고 상한을 폐지하라고 요구하며 다음 달 21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했다. 경제안보의 핵심 자산이 된 반도체를 볼모로 파업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형국이다. 노조측은 SK하이닉스에 비해 성과급이 적은 데다 기존의 성과급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파업 강행 이유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본비용까지 반영해 성과를 측정하는 경제적부가가치(EVA) 방식은 글로벌 기업에서 통용되는 합리적 기준이다.

문제는 요구의 수준과 파급력이다. 현재와 같은 실적이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직원의 1인당 성과급이 6억원을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액은 45조원에 달한다. 이는 삼성전자의 연간 배당금 11조원의 네 배를 웃도는 규모다. 종업원들이 개별 성과 평가와 무관하게 기업 이익을 일괄 배분받는 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대만 TSMC도 주식 배분을 기본으로 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1억원을 크게 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현재 취업 중인 근로자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선행 투자, 배당도 거의 받지 못한 채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지지해준 주주들, 그리고 국가 인프라와 정책 지원이 결합한 결과다. 단기 호황의 과실을 현재 재직 중인 종업원들이 과도하게 선점하려는 접근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 반도체 산업은 국가 총력전이다. 대만의 TSMC는 미국과 일본으로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의 화웨이는 연간 연구개발비만 35조원을 투입한다. 미국과 일본 역시 막대한 보조금을 동원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가 생존하려면 엔비디아처럼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차세대 기술로 진화해야 한다. 성과급 잔치로 투자의 발목을 잡을 때가 아니다.

반도체 의존 구조는 거시경제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7% 증가했지만, 그중 55%가 반도체 기여분이다. 깜짝 성장을 기록하긴 했지만 ‘반도체 착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꺾일 경우 성장률 역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이미 두 배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초고액 성과급은 하청기업과 임금 격차를 더욱 벌리게 된다. 더 나아가 사용자는 고용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게 되면서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킬 수 있다. 반도체 기업 주주들이 이런 상황을 좌시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 역시 책임이 있다. 획일적인 일회성 현금 지급 관행이 갈등을 키웠다. 핵심 인재와 실질적 기여에 따라 보상이 정교하게 차등화되는 시스템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구글·엔비디아처럼 일회성 현금이 아니라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으로 지급해 장기 성과와 연계된 인센티브 비중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다.

AI 혁명의 산물인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성과급을 둘러싼 과열된 요구와 대립이 계속된다면 기술 패권을 노리는 주요국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리를 꿰차는 미래를 맞닥뜨릴 수 있다. 반도체 초격차는 종업원 현금 파티가 아니라 투자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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