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임업진흥원 피해목 자원화, 순환경제 중심 역할 적절한 선별·제재 과정 거쳐 활용 만년필·테이블 등 실물 제작 성과
영덕군 산불 피해목 처리 현장을 확인하는 모습. [사진 한국임업진흥원]
산불이 휩쓸고 간 산림 현장에 남겨진 과제는 매번 무겁게 느껴진다. 소실된 산림의 복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에 남겨진 산불 피해목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발생한 동해안 산불 이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 발생한 피해목 중 상당량이 여전히 처리되지 못한 채 산지에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의도 면적의 70배 규모인 약 2만ha에 달하는 피해 면적에서 발생한 피해목들은 적절한 수집과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방치된 목재들은 이용 가치를 상실하며 산림 경영의 부채가 될 뿐만 아니라, 산불 재발 시 거대한 연료 탱크 역할을 해 확산의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산불 피해목은 외관상의 손상과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저급재로 치부되거나 외면받아 왔다. 이런 우려가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2025년 3월, 영남 지역에 여의도 면적의 약 360배에 달하는 10만4000ha 규모의 산림을 휩쓴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인해 발생한 피해목 물량은 약 1900만㎥로 추정되며, 이는 국산 원목 연간 수급량의 5배를 상회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에 한국임업진흥원(원장 최무열)은 목재산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산불 진화 이후 선제적으로 피해목의 이용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대규모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영덕군에 찾아가 피해 현장을 확인하고 지자체 및 피해목을 처리하는 업체와 긴밀한 민·관·공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피해목을 활용하는 데 있어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산업계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데이터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국가유산수리 표준시방서 및 피해목 강도시험 결과 비교. [사진 한국임업진흥원]
기존 산불 피해목의 자원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안정성과 품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진흥원의 목재산업 관련 부서에서는 피해목 자원화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을 기획했다. 이어 진흥원의 고유 전문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2025년 영남 지역 산불 피해목(소나무)을 대상으로 목재의 물리적·기계적 성질을 대표하는 압축강도, 인장강도, 휨강도, 전단강도 등 주요 강도시험을 실시하고,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수리 표준시방서(2024)’의 국내산 소나무 강도 기준과 비교했다.
이번 시험은 산림청의 ‘단계적 이용원칙’에 따라 피해목의 신속한 고부가가치 이용을 위해 진행됐다. 특히 시험편 규모 및 시험인자를 간소화한 약식형 프로젝트성 실험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강도시험에서 전체적으로 일반 소나무 및 국가유산수리 표준 기준을 상회하거나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산불피해가 반드시 목재의 물리적 성능 저하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적절한 선별과 제재 과정을 거친다면 산불 피해목 또한 일반 건축은 물론, 높은 신뢰도를 요구하는 국가유산 수리 현장의 구조용재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확인한 것이다.
물성 검사와 더불어 진행한 실증 제작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진흥원에서 피해목을 활용해 만년필, 테이블, 기관 CI뱃지 등 실물 제품을 제작한 결과, 일반 목재와 동일한 공정으로 가공이 가능했으며 제작 과정에서 구조적 결함은 없었다.
이러한 진흥원의 발빠른 움직임은 정부가 더욱 확신을 가지고 피해목 자원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소중한 토대가 된다. 과거 대규모 산불 이후 피해목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무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피해목의 안정성과 현장 적용 가능성’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선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현장에서 확보된 실증 사례는 정책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단순한 산불 피해목 처리에서 자원 순환 중심의 산림경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동력이 될 전망이다.
또 진흥원은 피해목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산목재 이력확인제도’와 ‘탄소저장량 표시제도’ 등 기존의 인증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피해목의 수집부터 가공,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투명한 이력 관리가 뒷받침되면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재난을 이겨낸 국산목재’를 선택할 수 있다.
산불 피해목 자원화의 성패는 현장의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정책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진흥원은 이번 강도시험과 실증 사례를 통해 피해목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산림 정책이 수립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진흥원은 산림 재난 현장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를 가치 있는 국산목재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기술적·제도적 노력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