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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규의 과학산책] 소행성 그림자

중앙일보

2026.04.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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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달군 숯처럼 붉게 그을렸다. 지난해 9월 8일 새벽, 지구 그림자가 달을 통째로 삼킨 개기월식이 펼쳐졌다. 월식은 한 시간 반 남짓 한국 밤하늘을 수놓았다. 지구의 그림자는 달을 두 번 덮을 만큼 넓었다.

일곱 달이 지난 이달 19일, 이번에는 소행성이다. 긴 지름이 광주-부산 거리와 맞먹는 ‘허마이오니(Hermione)’라는 석탄처럼 시커먼 천체가, 이름 대신 긴 식별 번호로만 기록된 어느 어두운 항성을 가로질렀다. 감자 같은 모양 때문에 소행성 그림자가 긋고 지나간 시간은 곳에 따라 달랐다. 한반도 남쪽에서 길게는 1분 동안 별이 감쪽같이 지워졌다 살아났다. ‘성식(星蝕)’이다. 초고속 디지털카메라로 찰나를 낚아챈다. 탐사선을 쏘지 않아도 점 같은 작은 소행성의 크기와 윤곽을 잡아낸다. 이만하면 횡재 아닌가. 게다가 이놈은 서울역-잠실역 거리만 한 크기의 달까지 뒀다. 그 궤도까지 파헤칠 참이다. 쉬울 리 없다. 그 달의 그림자는 서울-뉴욕 거리를,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주파하는 속도로 휩쓸고 지나간다. 순간을 붙잡기 위해 GPS 신호에 맞춰 수 밀리초(1000분의 1초)까지 잰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이날 새벽, 한국천문연구원과 한 지자체 천문대, 청소년수련원은 소행성 그림자가 지나가는 한반도 남쪽 길목을 지켰다. 일본과 대만, 중국 40여 곳에서는 그 달 그림자를 담기 위해 하이난성과 타이베이, 일본 열도에 걸쳐 횡대로 촘촘하게 진을 쳤다. 한데 날씨가 돕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비 때문에 손에 쥔 게 없고 일본 혼슈 서부, 규슈도 비슷했다.

한여름처럼 화창했던 대만과 일본 동부는 달랐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임무 ‘데스티니 플러스(DESTINY+)’를 위한 예행연습이라 다국적 팀은 아쉬움이 컸다. 소식 없던 곳에서 들려올 반가운 기별을 고대한다. 초여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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