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나는 59세 나이에 신한은행 부행장을 거쳐 신한신용정보 대표직을 끝으로 33년 간의 은행 경력을 끝마쳤다. 은행장은 못 해봤지만 월급쟁이로 이만하면 할만큼 했다는 마음에 후련하게 퇴직했다.
박주원 노아의숲 대표가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 길을 걸어내려오고 있다. 장진영 기자
그리고 이듬해, 나는 강원도 횡성에 5만평(16만5200㎡)짜리 산을 매입해 ‘숲지기 박주원(72)’이 됐다. 이곳에선 새소리에 잠이 깨고 맑은 바람에 숨결이 저절로 터진다. 지천에 깔린 산나물을 캐다 자작나무 수액에 재워 발효시킨 묵은 반찬들은 그 자체로 명약이다. 산 생활 13년째, 지금도 나무 심고 길 닦으며 20대 장정처럼 고되게 일하지만 감기 한번 앓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거다.
산에서 무슨 일을 그리 하냐고? 나는 이 큰 산을 ‘산림 치유의 숲’으로 꾸미고 있다. 자작나무, 엄나무, 마가목 등 나무들을 수십만주 가져다 심었다. 산 전체가 내 정원이라 곳곳에 꽃과 약초도 심어 가꾼다. 산마늘이라 불리는 명이나물은 모종 사다 심은 게 20만 개, 씨앗을 가져다 직접 모종을 만들어 심은 건 100만 개다. 이 나무와 꽃, 약초들은 농약 한 방울 없이 오롯이 산의 기운만으로 키워낸다.
" 저는 이 산의 ‘봉이 김선달’입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처럼, 저는 산이 공짜로 길러준 나무의 수액을 받아서 비싸게 팔거든요. 또 산이 거저 내어준 산나물을 캐다 ‘산나물 세트’로 만들어서 또 팔아요. 계절마다 산림 숲 체험 교육을 받으러 청년, 학생, 임업 후계자들이 단체로 찾아오시니 제가 현장 학습을 시켜드리죠. 그러니 늘 바쁩니다. "
박주원 노아의숲 대표가 자신의 숲에서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를 꼭 끌어안고 있다. 장진영 기자
혹자는 내게 “은행에서 그리 높은 자리에 있었으니, 돈 많이 모아 그 큰 산을 샀구나”라며 부러움을 표한다. 돈을 다루는 은행에 다녔으니, 야무지게 재테크해서 목돈을 마련해 퇴직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다.
나의 솔직한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산을 매입한 자금은 판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를 팔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 겨우 마련했다. 그러니 애초에 나는 산에서 유유자적할 생각이 없었고 산을 잘 활용해 소득을 마련해야 했다. 산은 그런 나를 넉넉하게 품어주고 풍족한 소출을 안겨줬다.
산 생활 13년째, 어느덧 산은 온 가족에게 새로운 터전이 됐다. 아내는 제철나물이 흐드러진 산을 “우리 가족 전용 유기농 냉장고”라 부르며 곳곳을 누빈다. 딸은 결혼을 앞둔 시기, 이 산에서 웨딩촬영을 했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차려입은 딸이 턱시도 차림의 사윗감과 함께 산으로 올라왔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손수 가꾼 산에서 딸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기록한다는 게 놀랍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