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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공급 절벽과 규제가 부른 전세 대란…“전세, 씨가 말랐다”

중앙일보

2026.05.1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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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안 보이는 전세시장 불안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SK북한산시티 아파트. 전체 54개 동에 5300여 가구(공공임대 포함)가 모여 있는 강북 지역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2001년 입주 이후 올해로 25년 된 구축이지만,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 경전철 역세권(우이신설선 솔샘역)이어서 생활 여건이 양호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올봄 이사철을 맞아 서울 전체적으로 불어 닥친 전세난의 충격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개업소들이 네이버 부동산에 등록한 매물을 찾아보니 전세는 세 건, 월세는 한 건뿐이었다. 국민주택 규모로 불리는 전용면적 84㎡짜리(공급면적 33평형) 전세는 한 건도 없었다. 그보다 작은 전용면적 59㎡짜리(공급면적 24평형) 저층 전세 매물은 5억원에 나와 있었다.

단지 앞 상가에서 영업하는 안춘봉 공인중개사는 “예전 같으면 전세 매물이 수십 건씩 있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 이 정도 대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불과 몇 건 밖에 없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월만 해도 전용면적 59㎡짜리 전세는 4억원 정도에 거래됐다. 현재 시세는 3~4개월 전보다 1억원가량 뛰었다”고 설명했다.

강북 최대 대단지에 전세 3건뿐
중개사 “예전엔 수십 건 있었다”

전세수급지수 2주째 180 상회
2020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

장관이 “최대한 노력” 말했지만
한 달 넘게 실질적 대책 안 나와
서울의 전세 매물 부족이 심해지면서 전세수급지수가 2주 연속 180을 웃돌았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서울의 전세 매물 부족이 심해지면서 전세수급지수가 2주 연속 180을 웃돌았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강북 소형 아파트도 몇 달새 1억원 뛰어
같은 날 오후 서울 관악구 성현동의 관악드림타운 아파트를 찾아갔다. 공공임대를 포함해 5300가구가 넘는 관악구 최대 규모의 단지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니 중복 매물을 제외하면 전용면적 84㎡짜리 전세 매물은 세 건뿐이었다. 전세 호가는 최고 7억원으로 지난 1~2월 전세 실거래가와 비교해 1억원가량 올랐다.

단지 앞 상가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김진도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그는 “원래 전세 매물이 20~30건은 돼야 보통인데 지금은 매물 부족이 매우 심하다”고 말했다. 전세 세입자 가운데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대출을 받아 다른 집을 사서 옮겨 가는 바람에 매물이 나온 것 정도라고 그는 덧붙였다. 단지 앞 중개업소 가운데 5억9000만원짜리 전세 안내문을 붙인 곳이 눈에 띄어 물어보니 “해당 매물은 진작에 나갔고 지금 그 가격에는 전세를 구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남보다 강북 전세난이 더 심각
서울 전세난의 심각성은 통계 수치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KB부동산의 주간 아파트 통계(지난 4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80.3을 기록하며 2주 연속으로 180을 넘어섰다. 전세수급지수는 KB부동산이 현장 공인중개사들에게 전세 수요가 많은지, 공급이 많은지 물어본 뒤 그 결과를 지수화한 것이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많았다는 뜻이다. 최고치인 200에 가까울수록 전세난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서울의 전세수급지수가 2주 연속 180을 웃돈 것은 2020년 12월 이후 5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과격한 임대차 2법의 충격으로 전세난이 발생했던 시절이다. 그때만큼 전세 매물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특히 강북 14개 구(지난 4일 기준 187.5)의 전세난이 한강 이남 11개 구(170)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부도 전세난의 심각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전·월세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고 상태가 안 좋다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며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말로는 ‘최대한 노력’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전세난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은 한 달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주택 입주·인허가 동시에 급감
전세난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김 장관은 주택 공급 활성화도 언급했다. 김 장관은 “공급 활성화 대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며 “상가를 집으로 바꾼다든가 다양한 방법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를 보면 주택 공급이 활성화 되기는커녕 오히려 급격히 위축하는 모습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서울의 주택 준공(입주) 물량은 7381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감소했다. 미래의 주택 입주 물량을 가늠케 하는 인허가 물량은 더욱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 1분기 서울의 주택 인허가 물량은 5632가구로 1년 전보다 62% 쪼그라들었다. 주택 유형별로는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같은 기간 71% 급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서울의 공급 부족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 문제다. 서울시에 따르면 내년 서울의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7197가구로 올해보다 37% 감소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입주는 한 곳도 없다. 1000가구 이상 입주도 성북구 장위6구역(1637가구)과 삼선5구역(1223가구), 마포구 공덕1구역(1101가구),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3단지(1305가구) 등 네 곳뿐이다.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론 한계
그런데 정부·여당의 주택 공급 대책은 민간 사업자가 아닌 공공 주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9·7 대책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 등을 개발할 때 민간에 땅을 팔지 않고 직접 사업 시행자로 나서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주거복지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세종대 행정학과 교수)은 “공공 임대주택 공급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주거복지 정책이자 주거안정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간 사업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시장 원리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권대중 한성대 대학원 석좌교수(경제부동산학)는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에 의한 공급은 주민의 합의로 진행되는 것이지 정부가 끌고 간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재개발·재건축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규제한다고 시장이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정부가 시장을 이기겠다고 하면 당장은 통쾌할 수 있지만 실제 시장은 왜곡된다”고 했다.

가뜩이나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각종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세 매물 부족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다주택자가 시세 차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정부는 ‘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만, 전·월세 공급자로서 순기능이나 양면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획기적인 공급 대책이나 규제 완화가 없다면 앞으로 전세난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문 정부도 인정한 ‘다주택자 양면성’…현 정부는 전면 부정하며 규제 강화
최근 전세 시장을 둘러싼 규제 환경은 지난 문재인 정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현 정부가 꺼내 든 부동산 규제 수단은 상당 부분 과거에도 있던 것이지만, 그 범위와 강도가 훨씬 넓고 강해졌다. 무엇보다 실거주가 아닌 주택 소유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전·월세 물량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게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에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 등 4개 동(14.4㎢)만 토허제 대상이었다. 반면에 현 정부는 지난해 10·15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도 남부 12곳을 한꺼번에 토허제로 묶었다. 토허제 대상 구역의 면적(1106.2㎢)은 6년 전의 77배로 확대됐다. 토허제로 묶인 곳에서 아파트를 사면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월세가 불가능하다.

1주택자에 대해서도 실거주와 비거주의 차별이 심해졌다. 원래 1주택자에 적용하는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에선 거주 요건을 별도로 요구하진 않았다. 제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기 ‘거주’가 아닌 장기 ‘보유’에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인 2019년 12월에서야 장특공에 손을 댔다. 장기 보유와 거주에 각각 절반(40%)씩 공제율을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현 정부에선 1주택자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소유한 집을 전·월세로 내놓고 다른 집에 전·월세를 사는 경우에도 투기 목적이 아닌지 의심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장특공을 ‘폐지’하지는 않되 ‘실거주’ 요건은 대폭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결과적으로 비거주 1주택자에게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실거주를 선택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다주택자 악마화’도 차원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보면서도 전·월세 공급자라는 순기능을 아예 부정하진 않았다. 나중에 정책 방향을 수정했지만, 집권 초기에는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전·월세 인상폭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세금 혜택을 주기도 했다. 당시 부동산 정책의 총괄 사령탑이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다주택자의 두 얼굴(양면성)’을 지적하며 “모두가 내 집에 살 수는 없다. 민간에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다르게 부르면 다주택자”라고도 했다.

현 정부에선 심지어 부동산 정책 관련 서류를 복사하는 직원까지 다주택자는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임대주택 공급자로서 다주택자의 순기능이나 양면성을 말하는 정책 당국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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