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 중구 한국선장포럼 사무실에서 방규호 선장(한국선장포럼 전문위원)이 1979년 세인트마틴에서 일어난 파이오니어호 좌초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허리케인에 휩쓸린 배가 좌초해 한국인 선원 7명이 죽거나 실종됐던 그때, 다른 배 선원이었던 저도 그 섬에 있었습니다.” 한국선장포럼 전문위원인 방규호(69) 선장은 지난 11일 부산 중구 선장포럼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내 손으로 직접 이들의 묘비를 만들었다. 묻힌 곳이라도 확인하려 했지만, 실마리가 끊겨 막막하다. 다가오는 선원의날(6월 셋째주 금요일)이 되기 전 작은 단서라도 쥐고 싶”며 안타까워했다.
━
50년 전 허리케인 쫓는 韓 퇴역선장, 왜
방 선장이 목격했던 허리케인 해난사고는 약 50년 전 카리브해 북동부 세인트마틴(Saint Martin)섬에서 일어났다. 1979년 9월 3일 최대풍속 시속 280㎞에 달하는 허리케인에 파이오니어호가 좌초되면서다.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서에도 ‘기선 제2파이오니어호 좌초 및 선원 사상 사건’으로 기록돼있다.
재결서와 방 선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참치잡이 어선인 파이오니어호는 조업 과정에서 물고기를 잡는 바스켓 등 상당수 어구를 잃어버리면서 보급을 위해 섬으로 임시 입항했다. 방 선장은 “세인트마틴에는 이런 보급이 가능한 기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방 선장은 다른 참치잡이 어선에 승선해 일등 항해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방규호 선장은 지난 1월 약 50년만에 세인트마틴을 방문해 파어오니어호 사고 사상자 7명의 묘비와 실마리를 수소문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진은 세인트마틴 필립스버그에 있는 공동묘지. 사진 방규호 선장
방 선장은 “파이오니어호는 보급을 마치고 이튿날 다시 조업에 나갈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투묘(投錨ㆍ배가 정박하기 위해 닻을 바다에 내리는 것)가 제대로 안 된 채 정박한 상태에 강한 허리케인을 만나 좌초됐던 것”이라고 했다.
해양안전심판원 또한 당시 허리케인 여파에 7~8m 높이의 파도가 치는 가운데 파어오니어호 투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 상태에서 닻이 바람과 물살에 휩쓸려 선체가 끌려가는 주묘(走錨) 현상이 일어나며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사고로 선장 정대룡씨 등 7명의 사상자가 났다. 4명은 익사체로나마 시신이 발견됐지만, 선장 등 나머지 3명은 실종됐다.
방 선장은 “그 시절엔 선원이 해외에서 숨지면 시신 인도 등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며 “당시 세인트마틴의 한국인 기지장 하관무씨로부터 ‘사상된 7명의 묘비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서 시멘트 등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고 틀을 짜 투박하게나마 7명의 이름을 직접 새긴 묘비를 제작했다.
하지만 방 선장도 이들이 세인트마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지 못한다. “당시 승선했던 배의 조업 일정 때문에 매장까지는 보지 못한 채 먼저 출항해야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일은 방 선장이 퇴임할 때까지 오래도록 그의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는 “사상자 중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역만리에서의 고기잡이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잘 안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한 데다, 인연이 닿아 묘비까지 내가 제작했던 터라 마음 속으로나마 명복을 빌곤 했다”고 했다. 1977년 뱃사람이 된 방 선장은 1981년부터는 상선을 탔고, 2024년 퇴임할 때까지 업무적으로는 세인트마틴에 다시 들를 일이 없었다고 한다.
━
“하 선생 살아있소? 이국에 묻힌 7명, 찾아옵시다”
퇴임 이후 방 선장은 이들 7명이 묻힌 묘지의 행방을 추적해왔다. 파이오니어호 사고 때보다 국력이 크게 성장했고, 선원들의 헌신과 업적을 기리는 ‘선원의날’도 제정된 만큼 묘비의 위치를 확인하면 이들을 고국에 모셔올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다.
이런 바람을 안고 지난 1월 그는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다시 세인트마틴섬을 방문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방 선장은 “50년 동안 세인트마틴은 거대한 관광지로 변모했다. 7명이 묻힌 장소나 실마리를 찾으려 지역 공동묘지와 언론사, 도서관, 시청 등지를 샅샅이 수소문했지만 별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고 말했다. 귀국한 뒤에도 그는 세인트마틴 소재 시청 등 공공기관에 7명의 이름, 사고 경위 등을 설명하며 ’이들 묘비의 위치를 알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방규호 선장은 지난 1월 약 50년만에 세인트마틴을 방문해 파어오니어호 사고 사상자 7명의 묘비와 실마리를 수소문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진은 1979년 허리케인에 파이오니어호 좌초 사고가 일어난 세인트마틴 해안가. 사진 방규호 선장
현재 방 선장은 사고 당시 세인트마틴의 한국인 기지장이자, 자신에게 묘비 제작을 부탁했던 하관무씨를 백방으로 찾고 있다. 하씨가 기지장으로 오랫동안 세인트마틴에 체류했고 시신을 매장한 만큼 그를 통해 묘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방 선장은 기대한다.
그는 “주변을 수소문해 하 선생이 부산고를 나왔고, 80대 중반이라는 점은 알았지만 행적은 알지 못한다”며 “그를 만나게 되면 다시 세인트마틴을 찾아가거나, 해양수산부나 한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등 도움을 요청해 묘지의 위치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파이오니어호 사고는 추모하는 이 없이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7명이 바다에서 흘린 땀과 헌신은 잊혀지기 않길 바란다”며 “그들이 묻힌 곳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올 실마리라도 마련하는 게 후배이자 동료 해기사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