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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교토 신사에서 만난 조선 도공들의 기도

중앙일보

2026.05.13 08:04 2026.05.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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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연전에 한국정치사상학회와 일본정치사상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모임이 교토에서 열렸다. 학회가 끝나면 현지의 명승지를 돌아보는 행사가 따른다. 도시가 온통 세계 문화유산이니 보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누구는 기요미즈테라(淸水寺)를 가자 하고 누구는 도지(東寺)를 보러 가자 한다. 도대체 꼭 같은 절(寺)인데 어디는 ‘테라’이고 어디는 ‘지’이니 영문을 알 수 없다.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고유명사가 앞에 붙어 훈독(訓讀)일 때는 ‘테라’라 하고, 형용사가 앞에 붙을 때는 음독(音讀)으로 ‘지’라 한단다.

어디를 갈까 의견이 분분한데 흔한 곳은 가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때 한 한국인 유학생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고려 도공들이 살며 기도하던 고려 신사가 있다고 한다. “그거다.” 우리는 고려 신사를 찾아갔다. 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호젓한 것인지 쓸쓸한 것인지 보는 이의 마음이 스산했다.

임진왜란 때 잡혀 온 조선인이 7만 명 전후였으며, 주로 도공을 비롯하여 종이기술자와 성곽 기술자가 잡혀 왔고 가족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술자의 씨를 받기 위해 적은 숫자의 여성만을 데리고 왔으니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 중국의 문화인류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의 글에 따르면, 동양 사람들은 “땅을 떠나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한다(離土而不離鄕)”고 했는데,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때 나를 사로잡은 한 발원문(發願文)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朝は希望に起き(아침에 일어나면 희망에 젖고) 昼は努力に活き(낮이면 땀 흘려 일하고) 夜は感謝に眠る(밤이면 감사하며 잠들 수 있기를)’

일본에 하이쿠(俳句)가 유명하다지만 나는 이토록 애절한 시심(詩心)을 읽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 도공이 행복했으리라 생각했고, 또 행복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었더라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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