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실적이 일제히 급등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장부상 수치라서 유가 하락시 손실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기름값이 적혀있다. 뉴스1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정유 4사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5조원을 돌파했다. 직전 분기보다 3배나 많은 ‘깜짝 실적’이다.
13일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매출 24조2121억원, 영업이익 2조162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 1조8669억원이 증가한 수치다. 정유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비상장) SK에너지가 호실적을 이끌었다. SK에너지는 전 분기 대비 354% 증가한 1조283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다른 정유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직전 분기에 비해 GS칼텍스는 151% 증가한 1조6367억원의 영업이익을, HD현대오일뱅크는 90% 늘어난 9335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도 전 분기보다 231% 증가한 1조231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5조864억원에 달한다.
대규모 이익에도 정유 업계는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익의 상당수가 원유 도입 시점과 제품 생산·판매 시점의 가격차에 따른 ‘래깅(Lagging·지연) 효과’ 영향이라서다. 즉, 전쟁 전에 낮은 가격에 들여온 원유가 유가 급등 이후 원가 평균을 떨어뜨리고 재고 평가액을 높이면서 실적이 ‘좋아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SK에너지의 1분기 영업이익 중 약 60%를 차지하는 7800억원이 재고 관련 이익으로 나타났다. 에쓰오일도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인 6434억원이 재고 효과라고 밝혔다.
정유사는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가격이 올라도 꾸준히 원유를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쟁 이후 유가가 하락하는 ‘역(逆)래깅’ 구간에서는 비싸게 산 원유의 평가액이 급락하면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래깅 효과와 재고 이익은 회계 장부상 적힌 숫자라 향후 유가 하락 시 줄거나 소멸할 수 있는 일시적 이익”이라고 했다.
정부의 최고가격제로 쌓인 손실을 얼마나 보상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 3월 13일 시작된 최고가격제는 2분기 실적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격 통제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했지만, 아직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과 보상 방식 모두 불확실하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가장 큰 변수는 최고가격제 보전 규모와 시점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 하반기 실적이 위아래로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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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수혜로 깜짝 실적을 낸 석유화학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 4335억원 적자였던 롯데케미칼은 이번에 7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10분기 만에 흑자전환했다. LG화학은 지난 4분기 기록한 4133억원의 적자를 497억으로 크게 줄일 수 있었고, 한화솔루션(케미칼부문)도 같은 기간 1021억원의 적자에서 벗어나 34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석화업계 역시 중동 전쟁으로 나프타 공급난이 벌어지면서 래깅 효과와 재고 평가액이 증가하면서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 업계에선 2분기에도 중동 불안이 이어지면서 실적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반기엔 역래깅 효과가 우려된다. 한 석화업체 관계자는 “중동 갈등이 마무리되면 나프타 가격 하락으로 피해가 불가피하고 중국 물량이 쏟아지면서 과잉공급 우려도 있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석화업체에 대한 ‘중립’ 투자의견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긍정적 래깅 효과와 재고 효과가 2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긍정적 징후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