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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지역에 없는 일을 만들고, 사회 서비스 채우는 청년들

중앙일보

2026.05.13 13:30 2026.05.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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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마을과 사회적 일자리

경남 통영 청년마을 ‘섬바다음식학교'’서 운영하는 로컬 창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 통영 바다의 식재료를 활용한 브랜드와 콘텐츠를 만든다. [사진 섬바다음식학교]

경남 통영 청년마을 ‘섬바다음식학교'’서 운영하는 로컬 창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 통영 바다의 식재료를 활용한 브랜드와 콘텐츠를 만든다. [사진 섬바다음식학교]

청년들이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정착해 일자리를 만들고, 관계를 잇고, 사라진 생활 기능을 복원한다. 마을의 빈집을 고쳐 카페를 열고, 로컬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농산물을 온라인으로 전국에 판매한다. 지역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돌봄과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족한 교통 서비스도 마련한다. 누군가는 ‘창업’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지역활동’이라 부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청년 인구의 활동을 ‘사회적 일자리’라고 규정한다. 사회적 일자리는 단순히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뜻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 새롭게 발생한 필요를 해결하는 일이다. 돌봄, 이동, 교육, 문화, 관계망, 지역 자원 유통처럼 시장만으로는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행정기관이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다. 기존 산업이 줄어든 지역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건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은 이러한 트렌드와 맞물려 추진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며 자발적으로 일과 삶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연간 2억원씩 3년간 지원한다. 지난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61개의 청년마을에서 일자리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청년마을은 ‘사회적 일자리’다

그동안 청년마을은 청년 유입 정책으로 설명됐다. 수도권에 집중된 청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그 청년들이 정착하도록 돕는 정책이라는 해석이다. 최근 전문가들은 청년마을의 본질이 외지 청년을 불러들이고 지방을 떠나려는 청년을 붙잡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새로운 역할과 일자리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전북 무주군의 청년마을 ‘산타지’는 농촌의 돌봄 공백을 지역 자원으로 메우는 실험을 하고 있다. 무주군은 인구 2만3000명 규모의 지역으로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구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농번기나 주말에 일 나가는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맡길 곳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산타지는 이런 현실에 주목해 사회적 농장을 꾸려 돌봄과 배움의 공간으로 삼았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아이들은 농장에서 작물을 돌보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베이킹과 문화예술 체험에 참여한다. 올해부터는 관내 경계선지능 청소년으로 돌봄 대상을 넓혔다. 농장이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고, 부모에게는 생활 속 돌봄 안전망이 되는 셈이다.

황종규 동양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노동 수요가 바뀌고 있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전통적 일자리는 공장, 가게, 농업 등 상업 행위와 연결돼 있었지만, 인구 감소와 산업 쇠퇴가 겹친 지역에서는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동시에 돌봄, 교육, 생활 서비스, 지역 자원 유통 등 새로운 사회적 수요가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요를 누가 감당하느냐다. 행정이 모두 공급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시장만으로는 수익성이 낮아 지속되기 어렵다. 황 교수는 “이때 지역에 들어온 청년, 혹은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며 “청년마을을 비롯한 마중물 정책으로 기존 산업의 한계를 기술로 혁신하거나 지역사회 안에서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풀어내는 사회적 일자리가 지역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남 보성군에서는 청년마을 ‘전체차랩’이 사라져가는 보성 차(茶)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고령화와 소비 트렌드 변화로 한때 지역 경제를 이끌던 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청년들은 지역의 차 전통과 스토리를 현대적인 상품과 콘텐츠로 연결하는 데 주목했다. 전체차랩을 이끄는 용수진(28) 그린티모시레 대표는 “다원마다 차의 종류와 재배 방식,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모두 다른데 이런 무형의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새로운 유통 구조를 만들어 보성 차의 전통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용 창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년들과 지역 주민 간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고가 없는 청년들이 지역 안에서 안정적인 관계망을 만들지 못하면 지원 사업이 끝난 뒤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남 통영의 청년마을 ‘섬바다음식학교’는 지역 주민과 청년들이 관계를 기반으로 상생 구조를 만든 대표 사례로 꼽힌다. 통영으로 귀촌한 청년 정여울씨가 운영하는 수산식품 전문기업 웰피쉬는 청년들이 통영에 머물며 섬과 바다의 식재료를 배우고, 어민과 시장 상인, 지역 식문화 전문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들은 식재료 조달부터 가공, 포장, 판매까지 상품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 주민들은 오랜 시간 축적한 어업 경험과 식문화 지식을 청년들과 나누고, 청년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메뉴와 제품을 기획한다. 흔한 지역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민과 청년이 함께 지역 자원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는 창업 훈련인 셈이다.

그 결과 통영 바다장어는 ‘섬바다 장어포’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청년들은 패키지와 라벨 체계를 정비했고, 국내에서는 편의점 입점 절차가 진행 중이다. 홍콩에서는 ‘그레이트 푸드홀(Great Food Hall)’ 코리안 페어를 통해 수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청년마을은 성과만큼 한계도 있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내려온 청년들이 지역 자원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원주민들과 관계를 맺지 못한 채 고립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창업하고, 지원이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유한나 한신대 경영학 교수는 “청년마을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지역 안에서 얼마나 관계와 신뢰를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지원금을 통한 초기 유입을 넘어 지역의 경제주체, 주민 공동체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안에서 청년과 주민을 연결하는 ‘착근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기업,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중간지원조직 등이 청년들의 정착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수익성이다. 청년마을이 만드는 사회적 일자리는 지역 문제 해결에는 기여하지만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거나 대규모 고용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돌봄, 교육, 문화, 생활 서비스 같은 영역은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시장 규모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유한나 교수는 “청년마을을 사회적 일자리 관점에서 볼 때 성과를 고용 숫자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청년 한 명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지는 신뢰 자본과 공동체 회복력, 주민 연결망 같은 ‘집합적 외부효과’의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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