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전 88세의 환자가 기력이 떨어지고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어져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원하지 않는 입원이었다. 환자는 이가 없어 죽을 먹어야 하는데 이를 거부했다. 의료진은 "약 먹으려면 뭐라도 드셔야 한다"고 설득했다. 환자는 요지부동. 콧줄(L-tube,비위관)로 영양분을 넣는 것도 거부했다.
콧줄을 삽입해도 환자가 뺄 게 뻔했다. 손발을 묶고 진정제를 투여해서 강제로 삽입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병세가 악화해 의식이 거의 사라진 후에야 콧줄을 넣었다. 환자 상태가 계속 떨어졌고 약 2주 후 숨졌다.
김장한 울산대 의대 교수는 14일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주최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 포럼에서 존엄하지 못하게 생을 마감한 환자 사례를 들었다. 김 교수는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한 지 8년 지났지만 환자의 희망이 완전하게 받아들여진 게 13%에 불과하다”며 실태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고인이 된 42명의 환자 유족을 인터뷰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영양분을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행위로 보지 않는다. 공급하지 않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법에는 영양분이라고 돼 있지만,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입으로 먹기, 콧줄 영양, 위루관(배에 구멍을 내 위에 영양 공급), 정맥주사( TPN, 밥 주사) 등이 있다”며 “비위관, 영양제 주사는 중단 가능한 특수연명의료행위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망이 가까워지면 음식물을 섭취하는 게 어려워진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사회사상가 스콧 니어링은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곡기(穀氣)를 끊었다. 처음에는 과일 주스, 나중에는 물만 마시다 3주 만에 숨졌다. 그는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위에 밝혔고, 그대로 따랐다. 한국의 고승도 곡기를 끊고 숨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현행 연명의료법에서는 원하지 않아도 ‘강제 급식’을 당해야 한다.
지난해 인천의 대학병원에서 말기 폐암환자가 음식을 거부했다. 보호자가 크게 화를 냈다. 간호사가 영양제를 놨지만 뽑아버렸다. 의사도 보호자도 당황했다. 다른 사례. 환자에게 위루관으로 영양을 공급하던 의사가 양을 줄이려 하자 보호자가 “왜 굶기려 하냐”며 반발했다. 그러자 환자가 몰래 위루관을 뽑아버렸다.
이날 김 교수는 인공호흡기 치료를 둘러싼 혼란 상황을 지적했다. 현행법에는 말기환자는 이 치료를 해야 하고, 안 하면 처벌한다. 임종환자만 달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말기와 임종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고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기도 삽관,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입원이 안 된다”며 “말기환자도 연명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하면 갈등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기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극심하거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별적 중단 사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복규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토론자로 나서 “연명의료 결정 사항을 법으로 규정하고 환자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더해져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현행법은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연명의료 중단에 복잡한 조건을 걸어두고 있어 환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한한다”며 “의료진이 병원 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치거나 임상 가이드라인에 따라 윤리적 결정을 하면 이를 존중해야 환자 권리와 의료진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