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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피아졸라의 스승 나디아 불랑제

중앙일보

2026.05.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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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1954년,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사진)를 만났다.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리는 그녀는 아직 자기 길을 찾지 못한 이 아르헨티나의 음악가에게 중요한 조언을 남긴다. “클래식으로 전향하지 말고 오히려 탱고로 개성을 펼쳐라. 그것이 진짜 피아졸라다.” 작곡과 연주, 탱고와 클래식을 오갈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살리라는 것이었다.

이 조언이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피아졸라의 세계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젊은 시절 피아졸라는 선술집의 싸구려 음악 취급을 받았던 탱고를 부끄럽게 여겼다. 물론 탱고 안에 미덕이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항구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객들이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만들어낸 춤이었다. 개척자의 용기와 애환을 순간의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춤이 탱고였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접한 바흐에 비한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에서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이 들려준 쇼팽에 비한다면? 탱고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스승 나디아 불랑제는 단호했다. 그는 전통이나 위계보다 피아졸라 안에 쌓인 음악적 경험 그 자체가 소중한 자산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브뤼노 몽생종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손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과거에 기대서 미래를 구축할 수는 있다.” 피아졸라의 과거에는 바흐와 탱고가 함께 있었다. 스승의 역할은 고상함과 저급함을 가르는 편견으로부터 제자를 건져내는 것, 그리하여 그의 내면에서 함께 사는 바흐와 탱고를 서로 화해시키는 일이었다.

“난 너를 공부시키려고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난 오직 네가 살아 있는 순간에만 관심이 있어. 그런 순간 나는 너와 함께 살고, 또 너 스스로 살게끔 도와주려 애쓰지.” 그녀의 이 말은 진정한 스승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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