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을 투자 위험요인으로 언급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 뉴스1
최근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보고 의무에 따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공시한 2025년도 사업보고서는 우리 금융시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KB·신한·우리금융지주 등은 이 보고서에 지난해부터 정부가 강조해 온 ‘포용금융’ 확대 기조를 ‘투자 위험요인’으로 기록했다. 국내 공시에서는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리스크를 미국에선 명시한 것이다. 미국 법률 특성상 잠재적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을 경우 집단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들 금융지주는 주식예탁증서(ADR)를 통해 NYSE에도 상장돼 있다. KB금융은 “정부가 저소득층 및 금융 취약계층 차입자에 대한 포용적 금융정책으로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고자 했다”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정책 대응이 고객의 채무 불이행 위험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연체율 상승과 자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 역시 정부의 ‘새도약기금’ 등 포용금융 정책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연체율 증가와 자산 건전성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우리금융도 정상적이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부문에 대한 금융 지원이 의도치 않은 비용과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올해 1분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왜곡된 금리 구조는 더 큰 문제다. 일부 정책성 소액대출에서는 저신용자 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도 필요하지만, 금리는 위험을 반영한다는 금융의 기본 원칙까지 흔들 우려가 크다.
금융지주들이 SEC 공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경고음을 낸 것은 현재의 부담이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금융기관의 공공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포용금융에만 집착해 금융시장의 원칙과 질서를 왜곡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면 안 된다. 정부는 선의로 포장된 포퓰리즘적 금융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지키는 데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 금융 시스템이 무너진 뒤의 포용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