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장애인 거주시설(색동원) 입소자 심층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우석대 인지과학연구소 전지수 교수는 지난 1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적 공분을 산 색동원 사건이 알려진 지금이 장애인 사건 수사 체계를 바꿀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서울 국회의사당의원회관에서 만난 우석대 전지수 교수. 변민철 기자
우석대 인지과학연구소는 과거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과 신안 염전 강제노역 사건 등의 피해 사실 규명에도 참여했다. 전 교수 등 연구팀은 강화군 의뢰로 지난해 12월 색동원 여성 입·퇴소자 19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진행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3월 시설장의 성폭행 범행 첩보를 입수하고 같은 해 9월 해당 시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로부터 피해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난항을 겪었고, 전문 기관인 연구팀이 조사를 맡게 됐다.
전 교수는 “조사에 참여한 입소자들은 대부분 중증발달장애인이었다”며 “언어 표현으로 피해를 진술할 수 있는 입소자는 3~4명뿐이었지만, 나머지도 범행 장소로 소파를 지목하거나 성폭력 당할 당시의 상황 등을 몸짓이나 표정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구체적으로 재현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가 성폭력 등 학대 피해를 본 장애인이라는 선입관을 배제하기 위해 관련 질문을 최대한 지양했다. 대신 1박 2일간의 조사에서 장애인들과 라포(rapport·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 주로 놀이를 통해 이들이 자연스럽게 조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고 한다.
전 교수는 “의사소통·인지·정서·신체 능력을 먼저 파악하고, 자신의 신체를 본뜨는 ‘신체상 뜨기’ 등 놀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조사했다”며 “신체상 뜨기 놀이에서 아픈 곳에 반창고를 붙여보라고 하면 중요부위 등에 손을 가져갔다. 이런 놀이 조사 단계부터 성적 학대 정황이 점차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입소자들을 소집단으로 나눠 시설에서의 일과나 ‘아빠’ 혹은 ‘원장님’이라고 불리는 시설장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들은 서서히 자신의 학대 피해나 목격한 성폭력 장면을 고백했다고 한다. 특히 “(시설을 떠나면) 나는 갈 곳이 없다”며 진술을 거부하던 한 입소자가 마음을 바꿔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입소자들의 인지 능력을 고려하면, 본인이 직접 겪었거나 반복적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직·간접적으로 학대 정황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색동원 시설장 A씨가 2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팀은 관찰자(조사자)의 주관이 반영되지 않도록 소집단을 바꿔가며 조사하거나 행동 녹화 영상을 집단으로 관찰·분석하며 학대 정황을 2~3차례 이상 확인했다. 이 조사를 토대로 성폭력 등 학대 정황을 담은 ‘인천 강화군 장애인 거주시설(색동원) 입소자 심층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1월 확인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여성 장애인 전원이 성폭력 등 학대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민석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서울경찰청 내에 ‘색동원 사건 특별수사단’을 구성한 경찰은 이 보고서를 중요 참고 자료로 활용해 수사를 확대했다.
이후 경찰은 입건 전 조사에 착수한 지 약 1년만인 지난 2월 27일 시설장을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피보호자 간음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끝내 피해 진술을 추가로 확보하진 못했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3명만 성폭력 피해자로 특정했다. 검찰도 추가 피해자를 특정 없이 김씨를 기소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색동원 사건 범정부 합동대응 TF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전 교수는 “20년 전 발생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도가니 사건) 당시에도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가 영화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며 “재수사 과정에서는 비언어적 표현 등 장애인들의 진술이 크게 인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색동원 사건은 도가니 사건 이후 가장 언론의 관심을 받는 장애인 관련 사건이 됐다”며 “피해자들의 비언어적 표현이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인정되는지, 장애인 수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지 등 관련 수사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교수는 “색동원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간 시설에서 살면서 나타난 학대의 종합판으로 봐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시설을 돌며 또다시 학대당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피해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