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를 사흘 앞두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반도체 생산라인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담판이다. 정부의 긴급조정권 경고, 총수의 공개 사과에 대통령까지 “기업경영권 존중”을 언급하면서 타협 요구 분위기는 더 거세진 상황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 10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사후조정 절차를 재개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개시일(21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다.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삼성전자 DS 부문 사장단이 지난 15일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을 방문해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왼쪽 두 번째) 등 노조 지도부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번 협상은 분위기 자체가 이전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에 글을 올려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돼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노동자는 노무 제공에 대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위험과 손실을 부담하며 투자한 주주들은 기업이윤에 몫을 가진다”고 했다. 이어 “양지만큼 음지가 있고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과유불급, 물극필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힘 세다고 더 많이 가지고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책임지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덧붙였다.
앞서 주말 사이 정부와 삼성전자도 파업 저지 총력전에 들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 출장 일정을 중단하고 16일 급거 귀국해 공개 사과했다. 이 회장은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전 세계 고객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며 노조에 대화를 요청했다.
전날에는 전영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사장단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사측은 대표 교섭위원도 교체했다. 기존 김형로 부사장 대신 여명구 부사장(반도체부문 피플팀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도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 양측을 잇달아 만난 데 이어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김 총리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내일 사후 조정에서 노사가 반드시 성과를 내주시기를 온 국민과 함께 간절히 요청드린다”며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개 경고한 셈이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노조의 모든 쟁의행위는 30일간 중단되고 강제조정 절차에 들어간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전자 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 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김종호 기자 20260517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협상이 단순 임금 갈등을 넘어 산업계 전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제도화를 수용할 경우 다른 대기업 노조로 요구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주 반발도 변수다. 일부 소액주주 단체는 노조 요구안이 기업의 투자 재원과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이 우려하는 건 생산 차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증시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반도체 공장 파업은 곧 국가 경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정부 내부에서는 파업 장기화 시 경제적 피해 규모가 최대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와 총수까지 모두 나선 상황에서 이번 협상은 노사 모두에게 사실상 퇴로 없는 마지막 승부가 됐다”며 “오늘 협상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산업계 전반의 노사 관계 흐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