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1000만원 TV빌리면 200만원…변칙 '내구제대출' 일당 잡고보니[영상]

중앙일보

2026.05.17 19:0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경찰이 찾은 내구제 대출 관련 장물 창고 모습.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 울산경찰청

경찰이 찾은 내구제 대출 관련 장물 창고 모습.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 울산경찰청

급전이 필요했던 40대 A씨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가전제품을 렌털하면 즉시 현금을 지급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광고를 보고 연락한 대출 브로커는 "700만원 상당의 냉장고를 A씨 명의로 렌털하면 계약한 물건값의 15%를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국내 한 가전 구독 서비스 업체와 냉장고 렌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냉장고는 A씨의 집이 아닌 브로커가 지정한 장소로 배송됐다. 브로커는 이를 장물업자에게 넘겨 처분했고, 판매 대금 중 일부를 A씨에게 지급했다. A씨는 냉장고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지만, 계약 기간 렌털 업체에 매달 이용료를 납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처럼 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을 상대로 이른바 '내구제 대출'을 알선해 거액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내구제 대출은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대출'이라는 의미의 신조어로, 금융기관이 아닌 불법 사금융을 통해 현금을 융통하는 변칙적 대출 수법이다. 업계에서는 '냉장고 깡', 'TV 깡' 등으로도 불린다.

울산경찰청은 사기 등의 혐의로 대출 브로커와 장물업자, 렌털 명의 제공자 등 8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4명을 구속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SNS와 인터넷에 '신용과 관계없이 즉시 현금 지급', '렌털만 하면 바로 현금 지급' 등의 광고를 게시해 돈이 급히 필요한 저신용자들을 모집했다. 이후 이들 명의로 TV,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안마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빌리도록 한 뒤, 해당 제품을 장물업자에게 넘겨 처분하고 판매 대금을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경찰청. 연합뉴스

울산경찰청. 연합뉴스


렌털 명의를 제공한 저신용자들에게는 전체 계약 금액의 15~20%가 지급됐다. 예컨대 1000만원 상당의 TV를 3년 또는 5년 조건으로 렌털하면 최대 200만원을 현금으로 건넸다는 의미다. 겉으로는 단순한 가전제품 렌털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금리 불법 대출과 유사한 구조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렌털 명의자는 당장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이후 수년간 계약 기간 매달 임대료를 부담해야 한다. 물건은 이미 처분돼 손에 남아 있지 않고, 이용료를 연체할 경우 신용도 하락은 물론 채권 추심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렌털 가전은 제품에 일련번호가 부착돼 있고 렌털 제품이라는 표시가 남아 있어 일반인이 직접 판매하기 어렵다"며 "운반도 쉽지 않아 브로커를 통해 장물업자가 개입하는 구조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장물 창고에 보관 중이던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127대를 압수했다. 시가로는 5억5000만원 상당이다. 대출 브로커 등이 챙긴 범죄 수익 규모는 추가 수사를 통해 산정하고 있다. 양희성 울산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장은 "신용과 관계없이 즉시 현금을 지급하거나 렌털만 하면 돈을 준다는 광고는 불법 사금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명의를 제공한 사람 역시 범행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윤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