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민음사가 19일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창업주 고(故) 박맹호(1933~2017) 회장이 ‘백성의 소리(民音)’를 뜻하는 이름을 짓고, 당시 집 주소를 사무실 주소 삼아 출판사 등록을 마친 것이 1966년 5월 19일. 이후 60년이 지난 현재의 민음사는 민음사뿐 아니라 황금가지(장르문학), 사이언스북스(과학), 비룡소(아동) 등 9개 브랜드, 4개 법인으로 이뤄진 출판그룹이다.
민음사 박맹호(1933~2017 회장. 2010년 인터뷰 때 모습이다. [중앙포토]
자서전 『책』에 밝힌 대로 박맹호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신춘문예도 참여한 문학청년. 창립 초기의 부침을 딛고 민음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문학과 동시대 한국문학을 아우르는 문학 단행본을 내며 문단과 출판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쌓아왔다. 1973년 시작한 ‘세계 시인선’ 시리즈는 해외 유명 시인들의 시를 중역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번역으로 원문과 함께 실어 각광을 받았다.
민음사 '세계 시인선 '1권인 이백과 두보의 '당시선' 초가 표지. . =[사진 민음사]
특히 이듬해 시작한 ‘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는 웬만한 시집이 자비 출판이나 소량 출간에 그쳤던 시절, 젊은 비평가들의 선정한 동시대 문인들의 시를 새로운 판형으로 출간해 독자와 만나는 접점을 넓히고 시집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첫 책인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는 출간 직후 3년 간 3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1974년 김수영(1921~1968)의 '거대한 뿌리'의 초판본. 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첫 책이다. [민음사]
1976년에는 계간 ‘세계의 문학’을 창간하고 이를 통해 제1회 ‘오늘의 작가상’ 공모를 알렸다. 이 상은 등단 작가를 포함해 신인급 작가들의 장편을 공모해 수상작을 곧바로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1회 한수산의 『부초』, 2회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3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이 차례로 화제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세계의 문학’으로 시작된 문예지의 바통은 2016년부터 격월간 ‘릿터’로 이어지고 있다.
1976년 가을 계간 문예지 세계의 문학' 창간호. [사진 민음사]
짧지 않은 역사 만큼이나 스테디셀러도 여럿이다. 특히 ‘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보고.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1권으로 낸 이후 다음달이면 500권 돌파를 앞두고 있다.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총서'로 출간된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초기 표지. [사진 민음사]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민음사는 문지나 창비와 다른 문학주의의 지평을 열었다”며 “감각적이고 깊이 있는 문학을 꾸준히 내면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렸다”고 말했다. 시인인 그는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에 대해 “화제를 일으키며 새로운 공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 문단과 서점가, 독자들의 폐활량을 키웠다”고 표현했다. 1988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은 정희성, 이성복, 황지우, 김광규, 최승호, 김용택에 이어 7회는 당시 25세의 장정일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수상했다.
2010년대 시작한 경장편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도 있다. 이를 통해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물론 일본을 비롯해 해외 여러 나라에 출간됐다. 정은숙 대표는 “번역을 활성화해 해외문학으로 한국문학에 영향을 주고, 한국문학의 해외 수출에도 토대를 만든 출판사”라고 했다.
민음사 '오늘의 산문선집' `1권으로 출간된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초기 표지. [사진 민음사]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지만, 민음사는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과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앞장서는 출판사로 이름나 있다. ‘책보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내세운 공식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2019년 시작해 현재 구독자가 47만 명 넘는다. 여기에 단골 출연하는 민음사 직원들은 독자들 사이에 유명인이 됐고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록’ 같은 TV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출판사 유튜브 채널로 단연 독보적인 성과다. 유료 멤버십 서비스 민음북클럽은 2011년 시작해 16기인 올해는 온라인 접수 1시간 만에 1만 명 넘게 몰렸고, 결국 예정보다 회원수를 5000명을 늘려 2만 5000명이 가입하는 성황을 이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TV 주요 출연자인 민음사 해외문탁팀 편집자 김민경씨가 마케팅팀 조아란 부장과 함께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언급하면서 판매가 부쩍 늘어난 책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민음북클럽과 민음사TV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출판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모델을 만들어냈다”며 “해외에서도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편집자 출신으로 민음사 대표를 지낸 그는 “민음사는 문학, 과학, 인문학 아울러 한 시대의 교양의 틀을 제시하고, 출판을 시대 흐름에 맞춰 적절히 진화시키고 앞서 가는 모델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출판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덧붙어 “편집자가 내고 싶은 책만 낼 수 있는 자율성이 매우 높은 회사”라고 전했다.
민음사 로고 [사진 민음사]
출판계에서는 최근 민음사의 경영실적도 화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5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민음사 출판그룹 4개 법인 가운데 민음사만의 매출은 전년보다 23.8%가 늘어난 206억원으로 단행본 주요 출판사 22곳 중 8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2.7%나 늘어 약 41억원은 22곳 중 4위다. 한강 작가의 책이 없어 2024년 노벨상 수상 특수를 누리지 못한 출판사란 점에서 더 눈에 띄는 성적이다. 민음사는 2024년에도 전년보다 매출은 16.7%, 영업이익은 54.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대외 행사는 딱히 없다. 민음사 관계자는 “출판사는 책으로 말한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대신 다음달 세계문학전집 500권 돌파에 맞춰 브랜드북 『민음사세계문학전집』(가칭)을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해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을유문화사의 정상준 대표는 “저에게 민음사는 한국 출판 역사에서 가장 굳건하고 가장 높은 산”이라며 “창립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