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도시 중 하나로, 황해를 사이에 두고 인천과 직선거리 약 450㎞ 마주 보는 곳이다. 그 도심에서 불과 5㎞, 차로 15분 거리에 '선녀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해발 375m의 셴구딩(仙姑頂)이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평범한 언덕처럼 보이지만, 날이 좋은 날 정상에 서면 황해와 류궁다오(劉公島)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2,600여 톤의 옥(玉)으로 빚어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천 년 전설을 간직한 봉우리
산둥성 웨이하이
셴구딩의 '셴구(仙姑)'는 선녀, 혹은 선고(仙姑)라 불리는 여신이다. 전설에 따르면, 남편을 바다에서 잃은 뒤 홀로 시부모를 봉양하며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던 여인이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북송(北宋) 경덕(景德) 4년인 서기 1007년, 그녀를 기리는 사당 셴구먀오(仙姑庙)가 이 봉우리에 세워졌다. 그 안에는 한문과 요(遼)나라 문자 두 가지로 새겨진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웨이하이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당 비석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별도로 보존되고 있다.
2,600톤의 옥이 만들어낸 세계
산둥성 웨이하이
셴구딩은 2006년부터 3년에 걸친 대규모 공사를 거쳐 2010년 '셴구딩 옥 문화 관광구'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쓰인 옥의 양이 무려 2,600여 톤. 경내에는 1,000여 점에 달하는 대형 옥 조각 예술품이 자리해 '천하제일 옥 경관구( 天下第一玉展區)'라는 칭호를 얻었다.
입장하면 가장 먼저 우싱먼(五行門), 오행문이 맞이한다. 한나라 궁궐 양식을 본뜬 웅장한 문으로, 왼쪽부터 수(水)·금(金)·토(土)·화(火)·목(木),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문이 나란히 서 있다. 각 문마다 서로 다른 옥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깃든 기운도 저마다 다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행문을 지나면 첸쿤위다오(乾坤玉道)와 퉁링위다오(通靈玉道)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 660여 미터에 달하는 이 옥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130점의 옥 조각과 30m가 넘는 정교한 옥벽(玉壁)이 차례로 나타난다. 선고의 전설을 주제로 한 대형 옥 조각 네 점도 이 길 위에 서 있다. 약초를 캐는 선고(仙姑採藥), 바다에서 길 잃은 배를 인도하는 선고(仙姑引航), 집을 옮기는 선고(仙姑搬家), 아이를 점지하는 선고(仙姑送子). 전설의 네 장면이 옥으로 조각되어 순서대로 펼쳐진다.
세계 최대 단일 옥 조각, 위셴궁(玉仙宮)
산둥성 웨이하이
첸쿤위다오의 끝, 이 풍경구의 핵심인 위셴궁에 다다른다. 높이 38m, 길이 50m, 너비 40m. 명·청 시대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전각은 파란 유리 기와와 남목(楠木) 문창이 어우러져 단정하면서도 웅장한 품새를 풍긴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면 높이 8.8m, 무게 300톤이 넘는 선고 옥 조각상이 방문객을 내려다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옥 조각이다. '위의(威儀)가 사해에 미치고, 영기(靈氣)가 동방을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사방에는 풍(風)·조(調)·우(雨)·순(順), 네 호법신의 조각이 함께 서 있어 전각 안을 묵직하게 채운다. 300톤의 옥이 한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말이 필요 없어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웨이하이
위셴궁을 지나 계단을 따라 더 오르면 셴구먀오와 정상 전망 포인트에 닿는다. 동쪽으로 황해와 류궁다오가 시야 가득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웨이하이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위로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산둥성 웨이하이
내려오는 길에는 루이후(如意湖, 여의호)에 잠시 멈추는 것도 좋다. 다리와 호수의 윤곽이 합쳐져 '여의(如意)' 자 모양을 이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호수 안에는 물고기와 거북이가 자연 상태로 서식한다. 오전 시간대라면 맑은 빛 속에서 옥 조각들이 은은하게 빛나는 순간을 볼 수 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셴구딩은 천천히 걷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웨이하이를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바다를 보러, 해산물을 먹으러, 혹은 그냥 가깝다는 이유로. 하지만 셴구딩을 올라본 사람은 안다. 천 년의 전설과 2,600톤의 돌이 빚어낸 그 고요한 무게를 올려다보고 나면, 웨이하이는 조금 다르게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