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유가에서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물상이다. 그래서 군자가 되기 위한 목표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실천을 들고, 이의 단서로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든다. 공자는 이 중에서 인과 의를 특히 중시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강조하는데 남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 누구나 안타까워하므로 오늘날은 측은지심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반면 수오지심은 예나 지금이나 실행에 옮기기가 힘들긴 매한가지다.
제 목숨 걸고 단종 시신 수습한 용기
부끄러움 아는 수오지심에서 비롯
조카 왕위 탈취한 세조와 공신들
유교 국가 이념과 인륜 저버려
공동체 잊은 종교인, 귀족 노조…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 되새겨야
강원도 영월 청령포. 서강이 청령포를 둘러서 흐른다. [사진 김정탁]
우리는 의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흔히 의사(義士)를 연상하는데 의사처럼 의인이 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의인 안중근처럼 되려면 보통의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어서다. 또 나라가 위태로워져야 하는 등의 상황이 펼쳐져야 의인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므로 자기 뜻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의리를 무조건 실천한다고 해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다. 잘못된 의리를 지키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고, 깡패 세계, 심지어 정치 세계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해 우리를 우울하게 해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정말로 의로운 사람일까? 그 답은 수오지심, 즉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부끄러움이란 정직하지 않아 남을 속이거나, 아는 바대로 실천하지 않거나, 베풀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색할 때 나타난다. 반면에 부끄럽지 않음은 그 반대일 텐데 수양대군의 왕위 탈취에 대해 강력히 반대해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아들을 포함해 3대가 도륙당한 사육신이 조선시대를 부끄럽지 않게 산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육신을 언급할 때마다 우리 가슴이 먹먹해진다.
청령포에 있는 단종이 머물던 처소. [사진 김정탁]
섭정하다 깨끗이 물러난 주공 반면에 아버지 세종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린 수양대군과 그를 도와 일을 성사시킨 한명회·신숙주·정인지 등은 누가 뭐라 해도 조선에서 가장 의롭지 못한 삶을 산 사람들이다. 일부에선 신숙주는 좀 달리 평가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글쎄다. 그는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갖추었는진 몰라도 이에 상응하는 지성을 갖춘 선비는 아니어서다. 지성이 되려면 어떤 게 바른지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그는 세종의 사랑을 듬뿍 받은 집현전 학자로 세종을 배신했으니,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수양대군과 계유정난의 공신들은 어째서 이처럼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그 이유는 멀리서도 찾을 필요 없이 『논어』에 당장 나타난다. 공자는 『논어』 전반에 걸쳐 주공(周公)을 높이 받들었다. 그래서 꿈에 주공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의 수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걱정할 정도였다. 공자가 주공을 이렇게까지 숭배한 건 그가 어린 조카 성왕을 대신해서 섭정한 뒤 깨끗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다. 그러니 주공처럼 어린 조카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왕위에서 조카를 강제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수양대군과 그 일당을 공자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했으리라.
또 『논어』 ‘학이’ 편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만든 규범을 바꾸지 않는 게 효라고 한다. 그런데 수양대군은 규범 정도가 아니라 왕까지 바꾸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으니, 보통의 불효를 한 게 아니다. 또 세종은 죽기 직전 집현전 학자들에게 어린 손자를 잘 보살펴 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는데 이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수양대군 편에 선 신숙주와 정인지는 유가의 기본 덕목인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예마저 다 하지 못했다. 반면 이들을 제외한 다른 집현전 학자들은 사육신만큼은 아니어도 자진해서 가시밭길을 택한 건 오로지 이런 예를 지키려고 해서다.
더구나 조선은 유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도 유가가 강조하는 이런 가치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했으니 어찌 용서받을 수 있는가? 당시 명나라에도 수양대군처럼 왕위를 찬탈한 영락제가 있어 사육신처럼 저항한 방효유(方孝孺)에게 10족을 멸하는 처벌을 했다. 10족이란 친가 3대, 처가 3대, 외가 3대 그리고 친구들인데 900명 가까운 사람들을 눈앞에서 처형시킨 뒤 마지막으로 그를 죽였으니, 그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테다. 이는 오로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 신념 때문이라 보는데 명은 조선처럼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보던 망향탑에서 본 서강 일대의 전경. [사진 김정탁]
생육신의 양심 이어지지 않아 그런데도 유교 이념을 내건 조선에서 공자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그렇다고 세조는 영락제만큼 큰 업적을 남긴 군주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그 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벼슬에 나아간 조선의 수많은 선비를 지금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생육신은 일말의 양심으로 인해 은둔의 길을 택했어도 생육신의 이런 처신이 선비들에게 계속 이어지지 못해서다.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이 250여 년이 흐른 숙종 때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그 오랜 기간 조선에서 벼슬한 수많은 선비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고 위로해야 할까, 아니면 규탄해야 할까?
사육신은 조선을 책임진 사대부인지라 자신들에게 닥친 이런 불행이 안타깝기는 해도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은 물론이고 가족의 안위마저 담보하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호장 엄흥도(嚴興道)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책임도 없었다. 그렇지만 평소 부끄러움이 뭔지를 알아 사육신 못지않은 행동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은 속된 말로 ‘쪽팔리지 않는 삶’이었을 텐데 그는 이런 마음을 늘 지녔기에 결정적 순간에 담대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의 이런 용기가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새롭게 조명을 받게 돼서 다행이다.
단종이 묻힌 영월의 장릉. [사진 김정탁]
단종이 귀양 가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다. 청령(淸泠)이란 ‘맑고 또 맑다’는 의미여서인지 청령포는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도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 단종에게 어울리는 장소처럼 보인다. 그런데 배를 타고 청령포에 내리면 습한 기운으로 가슴이 이내 답답해진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서강이 여기를 동그랗게 돌아 흘러서다. 또 뒤로는 절벽이 솟아 습한 기운이 잘 빠지지 않아 청령포는 아름답긴 해도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단종이 여기에 머물 때 비가 많이 와 한때 섬처럼 고립되자 그의 유배지가 영월읍으로 바뀌었다.
청령포는 단종이 이런 억울함을 이겨내고 묵묵히 머문 장소인지라 여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맑고 또 맑은 포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맑은 기운이 곧 의로움과 통하지 않겠는가? 수양대군이 왕이 돼 종로에 원각사를 짓는 등 불교에 심취했어도 자신이 저지른 죄과로 고통받았던 건 그에게는 이런 청령한 기운이 없어서다. 또 한명회가 한강 변에 압구정이란 멋진 정자를 지었어도 지금은 사람들이 부촌 아파트 정도로 기억하고, 신숙주가 자신의 빼어난 능력을 발휘했어도 숙주나물이란 별칭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이들에게도 청령한 기운이 부족해서다.
장릉에서 멀지 않은 엄흥도의 묘소. [사진 김정탁]
미시담론이 많아야 좋은 사회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부끄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부와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랑보다 증오에 빠진 종교인과 지식인, 공동체 의식이 결여돼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소위 귀족 노조, 악플을 달며 숨어서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부끄럽게 사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아지면 계유정난의 부도덕함은 과거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다. 다행히 2년 전 계엄령이 뜬금없이 선포되었을 때 몸으로 저항한 시민들로 인해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이들도 엄흥도처럼 일상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어서다.
지금은 수양대군의 정변처럼 ‘거대담론’이 아니라 엄흥도처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미시담론’이 많을수록 좋은 나라, 좋은 사회다. 이것이 엄흥도란 인물이 지금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